작성일 : 09-05-18 04:00
 조회 : 3,718
|
선(禪)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드야나(dhyana)’를 음사한 것으로 ‘고요히 생각한다’ 또는 ‘사유하여 닦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 문헌에서는 사유수(思惟修)로 번역하였습니다. 따라서 참선이란 ‘깊이 사유하여 닦아감’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참선의 진정한 의미는 ‘본마음 · 참나’인 자성(自性)을 밝히는데 있습니다. ‘본마음 · 참나’ 는 어느 누구에게나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으며, 청정무구하여 일찍이 티끌세간 속에 있으면서도 물든 일이 없이 완전합니다. 참선은 이러한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에 관한 확고한 믿음과 인식에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즉 내가 본래 완벽하다는 데서 출발하는 수행인 것입니다. 따라서 완벽을 향해서 나아가는 수행, 즉 불완전한 나를 완전한 나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완전한 나를 확인해 나갈 따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선으로 대표되는 수행법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전해집니다. 태국, 스리랑카,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의 남방불교권에서는 ‘위빠사나(vipassana)’라는 수행법이 전해지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북방불교권에서는 선종의 화두(話頭)나 공안(公案)의 의미를 추구하는 ‘간화선(看話禪)’과 조용히 자신의 본성을 비추어보는 ‘묵조선(默照禪)’등의 수행법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1. 위빠사나 위빠사나는 약 2600년 전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달은 수행방법으로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Sati(알아차림)’하여 ‘무상’ ‘고’ ‘무아’의 지혜를 스스로 증득하여 영원한 해탈에 이르는 수행법입니다. 위빠사나는 팔리어로 ‘vipassana’ 영어로는 일반적으로‘insight’ 또는 ‘insight meditation’으로 번역하며, 뛰어나다(visesa)는 의미와 다양성(vividha)을 의미하는 접두사 vi에 ‘보다’라는 뜻을 지닌 ‘passati’라는 말의 명사형인 ‘passana’의 합성어입니다. 따라서 ‘vipassana’는 ‘뛰어난 봄’ ‘뛰어난 관찰’ ‘사물의 본성을 꿰뚫어 통찰함’ 등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無常, 苦, 無我라는 관점에서 모든 현상을 사실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우리가 “나”라고 집착하고 있는 몸과 마음의 모든 작용과 ‘오온(五蘊)’과, ‘육경(六境)’에 대한 알아차림 등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을 수행의 대상으로 삼는 공부입니다. 오온이라는 대상을 관찰하면 그것이 덧없고, 실체가 없음을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집착과 갈애가 사라져서 마침내 마음이 만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관찰과 알아차림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비롯한 일체대상이 한 순간도 고정됨이 없이 변하고 생멸하여 실체가 없음을 스스로 통찰하여 알아차리게 됩니다. 알아차림이란 대상으로부터 마음이 떠나지 않고, 대상이 일어남과 동시에 그것을 인식하는 강력하고 지속적인 관찰로서, 대상에 마음이 밀착하여 대상을 확고하게 잡되, 그 대상을 조작하거나 관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이처럼 모든 현상을 아무런 집착함 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위빠사나는 지금 이 순간 있는 것을 사실 그대로 관찰하고 알아차림 하여 현상에 내재되어 있는 실재를 명확히 통찰함으로써 마침내 근본 어리석음 즉 ‘무명(無明)’을 타파하여 열반을 이르도록 하는 수행을 말합니다.
2. 간화선(看話禪) 인도불교가 중국불교로 이어지면서 수행체계에서도 하나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화두(話頭)’ 즉 ‘공안(公案)’의 출현인데 이는 하나의 문제를 의심을 그 본질로 하여 깊이 참구함으로써 마침내 깨달음을 획득하게 하는 간화선으로의 전개인 것입니다. 이 수행은 화두를 통해서 수행자로 하여금 큰 의심을 일으키게 하고 스스로 그 의심을 해결하여 결국 ‘무명(無明)’을 타파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는 수행법입니다. 종래의 인도불교의 선정수행은 4성제, 8정도, 12연기 등의 교리적 의미를 수행자가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데 비하여, 중국의 선종에서는 언어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실상(實相)의 정확한 의미를 곧바로 찾아 들어가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따라서 간화선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하여 경전의 가르침에 밖에 따로 전하여 오는 길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중국의 선종은 ‘마음을 바로보아 본성을 깨치면 부처를 이룬다(直指人心見性成佛)’는 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520년 달마대사가 인도로부터 중국에 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인도의 선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중국적인 것으로 면모가 바뀌어 종단 조직을 형성하게 되었고 점차 발전하면서 6조가 되는 혜능(慧能)대사 이후에 크게 일어나 여러 계파가 생기고 9세기 에서 11세기 사이에는 5가(家) 7종(種)의 여러 파에서 선풍을 크게 떨쳤습니다. 이 중에서 남송(南宋)이후에 이르러서는 조동종의 광지전각(廣智正覺)선사가 묵조선(默照禪)을 널리 펴고, 임제종에서는 대혜종고(大慧宗高)선사가 간화선(看話禪)을 크게 고취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선법은 역사적으로 보면 신라의 법랑(法郞)대사가 달마로부터 4조인 도신(道信)선사에게서 최초로 법을 받았는데 이는 북송(北宋)의 선인 조동종의 묵조선을 위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6조 혜능(慧能)대사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선사의 법맥이 임제(臨濟)의현(義玄)선사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 임제종의 간화선이 신라시대 보조국사를 거쳐 태고보우국사를 통해서 비로소 한국불교 선종의 가풍으로 확립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져 한국선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