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4-0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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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승도(一乘道)에 대하여(1)
성철 스님
여기서 말하는 일승도(ekayana)란 신(身), 수(受), 심(心), 법(法)의 네 가지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몸은 청정한 것이 아니며, 수는 즐겁지 못한 괴로움이고, 마음은 항상하지 않는 무상한 것이며, 법은 자성이 없는 무아라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근본불교에서는 부처님이 설한 여러 가지 수행법 가운데 사념처(四念處)를 바로 일승도(一乘道)라고 하였습니다.
몸을 관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르게 알고(正知) 바르게 생각(正念)하는 것입니다.
바르다는 것은 양변(兩邊)을 떠난 중도(中道)라고 부처님이 늘 말씀하셨습니다.
중도정견으로 몸을 보는 것이 몸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보통 성문이나 연각들은 몸을 볼 때 생멸(生滅)로 봅니다.
생멸적인 견해로 보면 몸은 생멸 변천합니다.
색안경을 쓴 것과 마찬가지니 푸른 안경을 쓰면 온 세상이 푸르게 보이고 누런 안경을 쓰면 온 세상이 누렇게 보입니다.
생멸이라는 견해가 앞에 가로놓이면 전체를 생멸로만 보고 정색(正色)은 보지 못합니다.
그런 생멸적인 견해로 보는 것은 중도정견이 아니라 변견(邊見)입니다.
정견으로 보면 내 몸 그대로를 실상(實相)으로 봅니다.
중생의 몸 그대로가 제물의 법신입니다.
본래 제불법신인 중생의 몸을 무상한 생멸의 몸으로 보는 것은 착각이고 망견입니다.
한 가지 비유를 들겠습니다.
큰 금덩이가 하나 있습니다.
전도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이 금덩이를 보고는 색이 누러니까 똥으로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아무리 착각해서 금을 똥으로 보더라도 금 자체는 변동이 없습니다.
중생의 착각이란 것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색신 전체가 그대로 진여법신인데 망견으로 착각을 일으켜 생멸의 몸으로 봅니다.
아무리 중생이 전도망상으로 여래의 견고한 법신을 생멸의 몸으로 보더라도 금강 법신은 조금도 변동이 없습니다.
아무리 금을 착각해 똥으로 보아도 금덩이 그대로이지, 금이 똥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금의 가치를 모르고 똥으로 보는 사람은 그것을 똥으로 쓰지 금으로는 쓸 줄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이 금을 납으로 본다 해서 금이 납으로 변하는 게 아닙니다.
금을 잘못 본다고 금의 함량이 줄거나 색깔이 변하거나 성질이 변하는 게 아닙니다.
금은 그냥 금일 뿐입니다.
그 사람이 금을 납으로 알아 썼을 뿐이지 금 자체가 납이 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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