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말씀

작성일 : 24-01-12 19:58
기도는 거듭되어야 한다(1) - 일타 스님
 글쓴이 : 도심혜천
조회 : 3,088  
기도는 거듭되어야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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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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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젊은 시절 수도 생활의 장애를 극복하고 힘을 얻기 위해 세 번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 첫번째는 6·25 전쟁이 일어나 피난길에 올랐던 22세 때의 일입니다.

20대 초반 통도사 강원을 졸업한 나는 대학에 진학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한 면(面)에 대학생이 한 명 있을까 말까 하던 시절이었고 우리나라에 대학교도 몇 개 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내가 당시에 그토록 대학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출세나 명예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한문 공부를 하여 어느 정도 문리(文理)가 터졌으니 이제부터 현대학문을 배우자. 그래서 순전히 한문으로만 이루어진 불교경전을 현대적으로 풀이하고 해석한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이랴.'

이렇게 생각한 나는 서울 동국대학의 입학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서울로 향했는데 때마 침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그만 안양에 서 인민군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아지트인 동굴 속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 꼬치 꼬치 캐물었습니다.

"너는 뭐하는 사람이냐?"

"중입니다. "

"중이 뭐냐?"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닦는 사람이오."

"이거 순 부르주아 아니야?

인민들의 피를 빨아먹고 무위도식하는 족속들 아니야?"

그들은 점점 거칠어지면서 무지막지하게 대하였고 나는 묵묵히 있었습니다.

더욱이 당시는 잡히는 젊은이들을 모조리 인민군 의용군으로 끌고 가서 총알받이로 세울 때였습니다.

'아, 이거 잘못 걸려도 크게 잘못 걸렸구나.

이제 꼼짝없이 의용군으로 끌려가서 죽게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조금 있으니 정치공작대원인 듯한 말쑥한 사람이 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당시 정치공작재원들은 학식도 있고 나름대로 교양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뽑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나를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중이구만 팔뚝 좀 걷어 보지!"

그래서 옷을 걷어 팔뚝을 내보였더니 단번에 얼굴이 부드러워졌습니다.

"연비 자국이군요 나도 불교신자요."

그러면서 내 팔뚝을 조심스럽게 만지더니 꿇어앉아 있던 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의자도 갖다 주고 그 당시만 해도 귀했던 사이다까지 대접하였습니다.

그리고 통행증을 하나 써 주면서 '어디든지 가다가 인민군들이 잡으면 이 통행증만 보여 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차를 태워 드리겠다면서 기다리라고 하더니 트럭이 한 대 오자 명령을 내렸습니 다.

"이 스님 가시는 데까지 잘 모셔 드려라."

그 연비 덕분에 안양에서 김천까지 편안하게 차를 타고 내려온 다음 진주 집현산에 있는 응석사(凝石寺)로 걸어서 갔습니다.

응석사에 도착했을 때는 매우 지친 상태였는데 다행히 주지스님이 쌀밥 한 사발과 반찬으로 간장 한 종지를 주었습니다.

나는 한 종지의 간장을 모두 밥에 부어 싹싹 비벼서 사흘 굶은 사람처럼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밥그릇을 비우자마자 주지스님이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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