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말씀

작성일 : 26-05-16 20:27
참선에 대하여(1) - 한암 스님
 글쓴이 : 도심혜천
조회 : 528  
참선에 대하여(1)


한암 스님


우리는 평소에 선(禪)을 말하지 않으니 선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비단 우리들만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와 역대의 조사와 천하 선지식 노화상이 한 사람도 선을 아는 자가 없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때에는 선을 잘 말하노니 선을 잘 아는 까닭이다.

비단 우리들만 잘 알 뿐 아니라 삼세의 모든 부처와 역대 조사와 천하 선지식 노화상과 일체 꼬물꼬물하는 함령(含靈 - 미물)들이 선을 알지 못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선을 모를 때는 불불조조(佛佛祖祖) 입을 벽위에 걸고 눈을 이마 뒤에 두거니와 선을 잘 알 때에는 말이 천하에 가득하더라도 말의 허물이 없으니 이제 말의 허물이 없는 소식을 가지고 한줄기 도(道)를 통하려 한다.

이 소식은 온전히 일체 중생의 보고 듣고 느껴 아는 알음이 아니로되 또한 보고 듣고 느껴 아는 것을 떠나서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화엄론에 이르시기를 '인생의 근본무명 그 분별하는 종자로써 부동지불(不動智佛 - 지혜로운 부처와 같이)을 이루어 신진오입(信進悟入 - 믿고 나아가 깨달음)하는 문을 삼는다'하시고 황벽선사는 '견문각지상(見聞覺知上)에서 본심을 인식(認識)한다'  하시고 보조국사는 '교를 배우고 선을 배우는 자가 비록 묘지(妙旨)를 만나나 모두 성경(聖境)에 미루고 스스로는 겁약함을 내는 것은 자기 마음의 날마다 쓰는 견문각지의 성(性)이 이 무등등대해탈(無等等大解脫)인 줄을 깊히 관찰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하셨다.

이 지(知)를 경론과 조문에 설명한 곳이 또한 많으니 화엄경에 각수보살이 문수보살께 부처 경계의 앎을 물으시니 문수보살이 게송으로 답하기를 '비식소능식(非識所能識)며 역비심경계(亦非心境界)니 기성본청정(其性本淸淨)이며 개시제군상(開示諸群生)라 - 식(識)으로 능히 식할 바가 아니며 또한 마음 경계가 아니라 그 성이 본래 청정하여 모든 군생을 열어 보이신다' 하시고, 기신론에 '진실식지(眞實識知)라 하시고, 보장론에 '그 앎의 앎은 있고 없는 것을 계교(計較 - 비교)하지 않는다' 하시고, 달마조사 게송에 이르시되 아구본심(我求本心) 심자지(心自持) 구심불득(求心不得) 대심지(待心知) - 내가 본래 마음을 구하여 마음 스스로 가지노니 마음을 구해도 알지 못하거든 마음의 앎을 기다려라' 하시고, 구나함불의 전법게에 이르시되 '불부견신지시불(佛不見身知是佛)이니 약실유지별무불(若實有知別無佛)이다 - 부처가 몸을 보지 못함에 앎이 이 부처이니 만일 실제로 앎이 있다면 별로히 부처가 없도다) 하시고, 혜가대사가 이르시되 '요요(了了 -마침내)히 항상 아는지라 말로써 가히 미치지 못한다' 하시고, 석두화상이 이르시되 '나의 법문은 먼저 부처가 전해 주되 선정과 해탈을 의논하지 아니하고 오직 부처의 지견을 통달함이라' 하시고, 하택은 '공적령지(空寂靈知)'라 하시고, 규봉은 '본적본지(本寂本知)라 하시고, 기타 모든 경론 가운데 말한 바 진여 원각 보리 열반 반야 바라밀 등이 모두 이 참앎을 가리킴이니 그 사실은 곧 일체 인생의 본원각성이며 청정심체이다.

반야 바라밀.

이 심성을 깨달으면 일반적으로 모든 부처와 평등하고, 이 심성을 미(迷)하면 만겁에 생사를 수순하니, 삼세 보살이 한가지로 배움이 이 마음을 배움이요, 삼세 제불이 한가지로 증득함이 이 마음을 증득함이요, 일대 장교(藏敎)에 나타냄이 이 마음을 나타냄이요, 일체 인생의 미혹함이 이 마음을 미혹함이요, 일체수행인의 깨달음이 이 마음의 깨달음이요, 일체 모든 조사들이 서로 전함이 이 마음을 전함이요, 천하 납승의 참방함이 이 마음을 참방함이니 이 마음을 통달한즉 온갖 것이 옳고 만물에 온전히 드러남이요, 이 마음을 미한즉 가는 곳마다 뒤집히며 생각마다 어리석고 미치나니, 이 본체(本體)는 일체 인생의 본래 있는 깨달음의 성품이며 진소국토(塵少國土)의 발생하는 근원이다.

그러나 이 도를 가히 배우지 못하나니 마음을 가져 도를 배우려 하면 도리어 미하리니, 배울 수가 없는 고로 깨달음도 없고, 깨달음이 없는 고로 닦을 것도 없고, 닦을 것도 없는 고로 증득할 것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없다는 말을 듣고 없다는 견해를 고집하면 또한 공견단견(空見斷見- 없다는 것의 실체를 볼 수 없다는 마음)에 떨어지고, 견문각지(見聞覺知 - 보고 들어 알면)를 인착(認着 - 인정해서)하여 소득심(所得心)이 있다고 집착하면 공견상견(空見常見)에 떨어지니 그러므로 육조대사가 이르기를 '허망됨이 따로 처소가 없고 어디든지 집착하는 곳이 허망됨이니라' 하셨다.

그런즉 인생의 무시겁래(無始劫來 -시작도 끝도 없이 오는)의 습성과 망령된 집착이 견고하여 빼버리기 어려움은 수미산과 같고 솟아 올라 멈추지 아니함은 큰 바다의 풍랑과도 같아서 도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으로 말하자면 푸른 하늘에 올라가기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한 생각의 기미를 돌이키면 대지광명(大智光)이 사람마다 본래 스스로 구족하여 불조로 더불어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아서 상근기의 큰 지혜를 한번 들으면 천번 깨달아서 대총지(大總持 - 지혜 즉 반야)를 얻나니 얻고 나서는 고단하면 잠이나 자는 것만큼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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