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말씀

작성일 : 26-04-02 23:00
활불 삼박자 - 용성 스님
 글쓴이 : 도심혜천
조회 : 806  
활불 삼박자

 
용성 스님


일단 스스로 활불(活佛)임을 선언하자고 했습니다.

활불인 이유는 체(體)로 보면 이미 부처요, 용(用)으로 보아도 그만큼의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활불이라고 자인(自認)한다면 지금 바로 활불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행복을 원하는 것이 인생일 터, 지금 바로 활불로서 행복하십시오.

행복은 기다려야 할 어떤 무엇이 아니고 지금 바로 선택하며 누려야 할 권리입니다.

활불인 당신은 지금 바로 행복해야 합니다. 혹여 지금 바로 행복할 일을 억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깨달아갈수록 누구나 이미 지극히 행복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수긍하게 되겠지만, 행복을 원한다면 이 순간 바로 행복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물론, 미래의 보다 더 높은 행복을 위해서 행복을 준비하는 일〔思言行〕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높은 행복을 위한 어떤 준비는 하더라도 지금 바로 행복을 결단하여 누리는 것은 최우선적으로 중요합니다.

나는 맨 먼저 표정을 유념합니다.

‘표정’하면 행복해 하는 표정과 불행해 하는 표정으로 일단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는 대체로 마음이 행복한 사람은 미소 띤 표정으로 사는 경향이 있을 것이요, 마음이 불행한 사람은 우울한 표정으로 사는 경향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깨침이 있어야 합니다.

즐거우면 웃음이 나오지만 웃으면 즐거워진다는 이치입니다. 전자를 심리주의(心理主義)라고 한다면 후자는 행동주의(行動主義)이지요.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다 행복해진 다음에 웃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일단 웃으면서 행복해지시겠습니까?” 하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 거의가 일단 웃으며 행복해지겠다고 답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듯하지만 나는 아주 다행스럽게 여깁니다.
활불인 자가 일단 활불을 드러낼 일은 웃음입니다.

방그레요, 빙그레요, 스마일이요, 미소요, 가가대소(呵呵大笑)입니다.

우리 불광인(佛光人)부터 미소 띤 표정 운동을 해보면 어떨까요?

불광법회의 장은 언제나 환한 얼굴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몇 차례 가가대소의 웃음을 웃는다면 어떨까요?

나는 그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하루에 10분 정도씩 온 몸으로 소리 높여 자지러지게 가가대소하는 일을 100일간 이행한다면 어지간한 암(癌)도 퇴치한다고 우리는 듣고 믿고 있습니다.
생각해야 할 시간에 행동하는 것이 어리석음이듯이 행동해야 할 시간에 생각만 하고 있다면 역시 어리석음입니다.

미소에 대해서, 웃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바로 미소를 지어보는 것, 웃음을 웃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눈을 감고 빙그레 미소의 표정을 지으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경험해보세요.

가가대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온몸으로 1분쯤 가가대소해보세요.

웃음이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불원간에 깨닫게 될 것입니다.
활불인 자는 행복한 자요, 행복한 자는 표정이 밝은 자요, 밝은 표정은 웃을 때 오는 결과물입니다.

활불은 일단 미소입니다.

웃어야 합니다.

한 개인이 웃어야 하고, 한 가정이 웃어야 하고, 한 회사, 한 나라, 이 지구가 웃어야 합니다.
활불은 밖으로는 미소로 드러나지만 안으로는 스스로의 행복을 확인합니다.

행복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행복하지도 않은데 행복을 선언하는 것은 억지라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행동해야 할 순간에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활불인 나는 행복하다’라고 속 소리로 혹은 드러나는 큰 소리로 여러 번 선언을 해보세요.

행복을 머리로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안으로이든 밖으로이든 행복을 선언하고 있노라면 점점 행복해지며 행복 수위가 높아지며 나아가서는 이미 행복한 처지에 있다는 것이 사실로 느껴지게 됩니다.
건전한 정신이 있다는 것, 몸이 이 정도로 건강하다는 것, 보고 듣는 눈과 귀가 있고, 맑은 공기, 푸른 하늘, 흐르는 물, 새들의 노래 등등 이미 무진장한 행복의 조건들에 휩싸여 있다는 것은 눈물겹게 인식하기에 이릅니다.

‘활불인 나는 행복하다.’는 선언이 억지가 아닌 지극한 사실입니다.
끝으로 ‘나 없다’ 혹은 ‘공하다’라고 선언합니다.

허공에 구름 한 조각이 흐를 때 그것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구름조차 사라질 때 허공은 더 개운하고 시원합니다.

빙그레 미소 짓고, 행복해 보이는 활불은 그대로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공한 활불일 때 활불은 드디어 무한으로 열린 해탈을 누립니다.
나는 많은 법회에서 활불 삼박자를 법문의 기초로 전합니다.

‘웃기-행복을 선언하기-무아(無我)를 선언하기’는 행동주의 행복론, 심리주의 행복론, 초월주의 행복론입니다.
자지러지게 온 몸으로 가가대소를 하게 하고, 바로 이어서 ‘활불인 나는 행복하다’를 양 팔을 번쩍 들면서 세 번 외치게 하고, ‘나 없다’를 조용히 선언하게 합니다.

놀랍게도 법회장의 거의 모든 분이 잘 적응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가능성을 확인하곤 합니다.
보다 드높은 행복 해탈을 위해 심도 있는 사언행(정사유-정어-정업)의 계획을 세워서 실천 궁행해야 할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바로 지금 행복을 누려버리는 사언행은 더욱 필요합니다.

거창한 언행 이전에 빙그레 웃는 밝은 표정을 지어보는, 혹은 하하하하 자지러지게 웃어보는 단순한 언행(言行)이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실천해보는 사람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행복선언이나 무아 선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삼법인(三法忍)이니,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니 하는 무게 있는 철학적 명상도 끝내는 중요하지만, 유치원생의 오락과 같이 극히 단순한 ‘나는 행복하다’ 혹은 ‘나 없다’를 군소리로 뇌까려보는 것이 마음을 천국으로 이끄는 신묘한 선약(仙藥)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실천만 해본다면 크게 수긍하게 됩니다.
이 ‘활불 3박자’는 25여 년간 5박 6일의 수련을 200여 회 실시해오면서 그 긍정성이 충분히 증명되었습니다.

‘생활불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의 하나로 이 간단한 활불 3박자가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불광인의 운동 차원에서 증명된다면 한국불교에 신선한 기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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