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처의 자리(2)
서옹 스님
그러면 우리 가정이나 사회의 여러 사람이 다 부처님이니까 거기서 우리가 부처님을 믿고 그 와 같이 부처님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서로 봉사하면 그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것이 그렇게는 안 됩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의 업장이 두텁습니다.
업장이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고통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그러한 업장을 이기려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법당에 와서 부처님 등상불에 정성을 들이고, 염불을 많이 하고 예배도 많이 하고, 이와 같이 신심으로 함으로써 우리 업장이 녹아져서 마음대로 복을 많이 받고 성불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과학문명시대는 욕심이 근본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현대는 산업시대라고 합니다.
산업경제만 발전시키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욕심으로만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근본적인 욕심 위에 이성이 있고, 이성 위에 존중할 참가치가 있는 부처 마음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훌륭한 것을 잊어버리고 욕망으로만 살기 때문에 요즘과 같이 험악한 세상이 되었으며, "인류가 전부 죽어버리겠다, 파멸을 면하지 하겠다"며 공포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위기를 해결하려면 부처 마음자리를 믿고, 부처 마음자리에서 과학문명을 다시 창조하고, 산업사회를 다시 건설해야 합니다.
거기에 행복하고 평화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옛날 스님의 법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한테 물었습니다.
"어떠한 것이 부처입니까?"
"전리저(殿裏底)니라. 법당 안에 계신 분이니라."
"법당에 모신 분은 흙으로 만든 등상불이 아닙니까? 나는 참부처를 묻는데 어찌 흙으로 만든 등상불을 말합니까?"
"아! 그렇다."
"그러면 어떠한 것이 참부처입니까?"
"전리저니라. 법당 안에 모신 분이니라. 법당 안에 있는 것이니라."
이것이 큰 법문입니다.
이것은 애들도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여러분은 잘못 알면 법당 안에 있는 부처님은 나무라든가 흙이라든가 등상불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부처 마음자리에서 보면 모든 게 다 부처님 마음자리가 되어버려 산은 산대로 부처가 되고, 폭포소리는 부처님 법문 소리가 되어버립니다.
새가 지적이는 소리도 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법문을 해봤어요.
십육응신아라한(十六應身阿羅漢)이라, 오늘 십육아라한을 조성했다.
일신십육야중비(一身十六也重非)로다.
그 십육아라한은 원래 근본 부처 마음자리 법신자리에서 응신으로 십육나한과 같이 되었는데, 우리 본래 면목, 그 깊은 데서 보면 근본 부처 마음자리 법신자리나 십육나한이나 둘 다 같습니다.
금강정체시비외(金剛正體是非外)라, 우리 금강정체 본래면목 본지풍광 참모습 자리에서 보면 시비 밖이라고 했는데 이 시비라는 것은 우리가 보통 말하는 시비가 아니고 거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작조아명 무료시(鵲鴉鳴無了時)로다, 그저 까치가 지저귀고 또 까마귀가 우는 소리 그칠 때가 없도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이건 말하자면 본지풍광 차원에서 한 말이라 뜻이 깊습니다.
이러한 심지법문을 한번 듣기만 해도 한량없는 복을 받고 꼭 성불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것은 좀 딱딱해서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런 좋은 법회가 있어서 인연을 맺기 위해서 한 말씀 드립니다.
그러면 구경의 궁극은 어떠한 것이냐.
답착비로정상행(踏着毘盧頂上行)하고, 높이 비로 정상을 밟고 간다.
팔각마반공리주(八角磨盤空裏走)로다, 여덟 모단 맷돌, 곡식을 가는 맷돌이 허공에 날아 달아나도다.
포사석녀향료공(抛梭石女響遼空)하고, 베를 짜는데 북이 왔다갔다 하는구나.
여러분은 잘 모를 겁니다만, 옛날에는 여성들이 다 베를 짯어요. 돌로 된 여자가 베를 짜는데 허공에 소리가 난다는 말입니다.
해저니우야규빈(海底泥牛夜叫頻)로다, 바다 밑에서 진흙소가 밤중에 울부짖는 소리가 자꾸 들려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본지풍광의 차원에서 그대로 한 말입니다.
이것을 한 번 듣고 여러분이 이제 공부하면 한량없는 복을 받고 한량없는 지혜라 나오고 성불한다고 그랬습니다.
한번만 들으면 꼭 성불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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