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처의 자리(1)
서옹 스님
험난한 세상에 신심으로 훌륭한 불사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고 중생에게 한량없는 행복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사람에게는 감각이라고 할까, 욕망이 있어요.
사람은 윤리도덕이라든가 여러가지 이성이 있어서 감각이나 욕망을 초월해서 문화를 창조하고 훌륭한 생활을 할 수 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성만으로는 서로 대립과 분열, 알력을 면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근본바탕에는 생각이 끊어지고, 무의식도 생각 없는 자리도 초월한 부처 마음자리와 영성자리가 있지만 그 자리 또한 이성으로 여러 가지 작용을 합니다.
우리 분별심은 바로 부처 마음자리가 작용한 것입니다.
부처 마음자리 차원에서 보면 분별이 아니고 부처 마음자리 작용이 됩니다.
또한 감각과 욕망도 그것만으로 살면 자신도 타락하고 여러 사람을 해쳐서 살 수 없게 되지만 부처 마음자리에서는 욕망도 부처 마음자리의 작용이 되어버립니다.
이렇게 이성이나 분별심, 욕망이 모두 부처 마음자리에서 작용하면 원만하게 되어서 모두 부처 마음자리의 한량없는 작용이 됩니다.
그래서 금강경에 보면 "만일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색상이나 형상으로 보거나 혹은 음성으로 보려고 하면 이 사람은 삿된 길을 행하는 거이 되어서 여래를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 자리는 형상도 초월하고 모든 감각도 초월하고 모든 감각도 초월하고 또 이성과 분별심도 초월했지만 초월한 그 자리가 모든 나라, 모든 땅, 모든 시간에 구현되어 거기에서 실현되어서 형상으로도 나타나고 또 모든 행동이 거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고목나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생과 형상을 초월하고 무의식까지 초월한 부처 마음자리가 모든 형상으로 나타나고여러가지 분별도 하게 되고 조화되어서 모든 부처님 작용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법화경에서도 "어떠한 사람이 부처님을 조성하면 한량없는 복을 받고 부처님이 되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 자리는 벌써 부처님 자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모래로 부처님을 만들거나 그리기만 해도 또한 한량없는 복을 받고 부처님이 된다고 했으며, 이미 되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장난삼아 손가락으로 그리기만 해도 한량없는 복을 받고, 또 부처님한테 합장을 한다거나 한 번 머리를 숙이거나 "나무불"을 하기만 해도 또한 한량없는 복을 받아서 부처님이 되어버린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신심으로 부처 마음자리에서 그러한 행동을 하면 비록 조그마한 행동일지라도 부처 마음자리는 한량이 없음을 뜻합니다. "공생대각중 여해일굴발"이라는 말과 같이 이 허공 무변한 우주도 부처 마음자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무변한 우주도 허공도 부처 마음자리에 비하면 여해 일구발입니다.
즉, 망망한 대해에 물거품 하나가 일어난 것과 같습니다.
우리 마음자리는 이와 같이 한량이 없어서 매우 소중한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그러한 신심으로 일거일동을 하면 한 가지 조그만한 행동이 한량없는 부처님 마음자리로 통해버립니다.
그 자리가 바로 한량없어서 조그마한 행동이 일체 행동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법화경에서 "한량없는 복을 받느니라. 바로 부처님이 되어버리는 것이니라." 하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건 내가 견해의 망지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본지풍광, 우리의 본래면목, 참모습이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이와 같은 자신과 신념을 가지고 살면 한량없는 복을 받고, 또 자신만 그런것이 아니라 그 자리는 누구나 똑같스니다.
또한 그 자리는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자비심이 우러나와 모든 사람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하여 부처님으로 모시는 것이 참으로 불사이고, 이것을 부처님 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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