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11-12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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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따라가는 복 이야기(1)
일타 스님
우리들 삶의 전과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연업(緣業)'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받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인연과 업'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이 나라에 태어난 것도 인연이요 업이며, 현재와 같은 부모를 만나고 부부가 되고 자식을 두는 것도 인연이요 업이며, 괴로움을 받는 것도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모두가 인연과 업의 결과인 것이다.
지금 영화를 누리거나 고통을 받는 것 모두는 과거에 심어 놓았던 씨(因)가 바로 이 시간 전까지의 여러 가지 주변 조건(緣)과 노력(業)에 의해 맺어진 결실(果)일 뿐이다.
단순히 금생의 일만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고 능히 기억할 수 있는 금생보다는 감지할 수도 기억할 수도 없는 전생의 인연과 업이 오히려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금생에 특별히 불교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도 훌륭히 법사노릇을 하는 사람은 과거생에 불교공부를 많이 하였기 때문이요, 부잣집에서 태어나 평생을 편안하고 풍족하게 사는 사람은 과거생에 복을 많이 지었기 때문이다.
또 과거생에 장원급제를 하겠다고 원을 세운 사람은 사법고시나 대학시험 등에서 수석합격을 하여 이름을 떨치게 되고, '꼭 한번 부자가 되어 보리라'고 원을 세운 사람은 재벌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원(因)을 세우기만 하고 충분히 복(緣業)을 쌓지 않는 사람의 경우에는 일시적인 재벌로 그치거나 잠깐 수석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것으로 끝을 맺고 만다.
뿐만이 아니다.
최고의 권력을 누리다가 권좌에서 물러난 후 비난을 받으며 불명예 속에 살아가는 사람, 처음에는 죽도록 사랑하던 연인이나 부부가 나중에는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서로에게 남기고 갈라서는 경우도 많다.
왜 이렇게 되는가?
모두가 인.연.업.과(因緣業果), 곧 인연의 법칙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 한양에 허정승이라는 분이 살고 있었고, 그에게는 천하일색인 애첩 박씨가 있었다.
애첩은 허정승에게 갖은 봉사를 다하였고, 허정승도 애첩 박씨를 무척이나 사랑하여 잠시도 떨어져 있기를 싫어하였다.
어느 해 봄, 나라에서 정승 판서들만이 모이는 어전회의(御前會議)가 열려 며칠 동안 집을 비웠다가 돌아와 보니, 그토록 사랑했던 애첩 박씨가 사라지고 없었다.
하인들을 불러 간 곳을 물었더니, 그들은 너무나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저께 웬 숯장사가 숯을 팔러 왔었는데, 둘이서 뭐라고 몇마디 주고받더니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허정승은 어이가 없었지만, 애첩을 잊을 수 없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였다.
그러나 애첩의 행방을 아는 이가 없었다.
허정승의 머리에는 오직 도망간 애첩 생각밖에 없었다.
벼슬도 정승도 다 그만두고라도 애첩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마침내 허정승은 조정에 들어가 사직서를 내고 애첩을 찾아 집을 나섰다.
몇 년에 걸쳐 조선팔도 방방곡곡을 찿아 헤매었지만 애첩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하였다.
어느덧 그는 오대산 깊은 산골에 이르게 되었고, 바위에 걸터 앉아 아픈 다리를 쉬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길 저쪽에서 웬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이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애첩, 바로 그 애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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