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7-19 03:59
 조회 : 2,751
|
마음 찾는 이치(2)
금오 스님
한번 머리를 돌이켜 보라.
비로자나 청정법신은 잠깐 일념에 착한 마음을 일으키더라도 법신은 따라 나타날 것이요 일념에 악한 마음을 일으키더라도 법신은 역시 따라 나타날 것이며 내지 청·황·적·백의 색처色處에도 나타날 것이며 공공적적한 곳에도 나타날 것이니 이러한 법리를 어찌 부처님들께서만 미루어 둘 일이랴.
모든 것이 다 일념의 공심空心이지만 마음의 형용을 보기란 어려운 것이다.
비유하면 바닷물에 짠맛이 있는 것은 뻔한 일이지만 맛을 잡아낼 수가 없듯이 사람사람 개개의 심체도 허허한 허공과 같아서 모양이나 빛깔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저히 볼 수 없건만 참을 잊고 외형에 사로잡힌 까닭에 공연히 외형상으로 찾아보려는 생각을 내게 되는 것이다.
이 어찌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아무리 제 마음의 형상을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니, 볼 수 없는 마음을 사무쳐 보라.
그리고 바꾸라.
나귀의 똥을 갖고 안주眼珠와 바꾸라 안주와 바꾸기만 하면 안광眼光이 햇빛처럼 반짝하여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어 모든 법을 다 통달할 것이며 마음과 마음이 도와 계합되어 삼라만상의 물상 그 어느 곳에서든지 부처를 만나고 조사를 만날 것이다.
일체 만법이 다 마음으로 쫓겨나고 멸하나니, 제발 마음을 관하라.
마음을 관하는 이는 죽고 사는데서 벗어날 것이오, 관하지 않는 이는 죽고 사는 생사에 영원히 빠질 것이다.
그러나 본마음만 보면 만사를 해결해 마치는 것이니, 만사와 만 가지 이치가 모두 마음이 움직이는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마음을 깨쳤었고 삼세의 보살도 마음을 배웠으며 역대의 모든 조사님과 천하의 납승들도 이 마음의 근원을 깨닫고자 하였다.
팔만대장경도 모두 마음을 발현한 것이니 즉 《화엄경》에서 선재동자가 남쪽으로 나아가 53 선지식을 두루 참방하여 선지식들에게 배움을 청한 것도 마음을 깨닫기 위한 것이다.
오명悟明한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대법大法에 왕이 되어 법에 온통 자재하며 지옥을 변동시켜 천당을 만드는 것도 모두 내 마음의 작용에 달렸다”고 하였다.
이렇듯 선악의 작용도 다 마음이니, 마음을 먼 데서 찾지 말아야 한다. 마음은 한결같기 때문에 언제든지 망妄을 비워버리고 진眞에 돌아가 도안만 밝으면 소분지계 따위가 어떻게 마음의 빛을 흐리게 할 것인가
위산潙山선사가 말하기를 “다만 올바른 안목만을 귀히 여김이오, 행리처 정도는 대수롭지 않다”하였다.
그러니 선을 공부하는 이는 먼저 올바른 인因을 심을 줄 알아야 한다.
오계와 십선법과 인과와 육도 등의 법을 믿음도 올바른 인이 아니니,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 믿어 올바른 지견을 구하고 나아가 자기의 청정한 도안을 결택하여 대사를 그르치지 말아야 한다.
또 고덕이 이르되 “나의 법문은 선정禪定, 해탈解脫, 지범持犯, 수증修證 등은 아예 거론치 않고 오직 부처의 지견만을 내세워 올바른 안목을 연 후 행리行李를 다독거린다.
향로向路, 즉 나아가는 길을 알지 목하면 억울한 파산이 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또 무엇보다도 대웅씨大雄氏가 출세하여 명심달도明心達道의 법으로 널리 인천人天을 제도해주신 큰 은혜 큰 은혜를 잊어서는 안된다.
아무튼 법에 의지하여 부처님의 교시를 어기지 말고 어디까지나 심법으로 몸을 닦으며 심법으로 마음을 찾으며 심법으로 한없는 중생을 제도하며 심법으로 법륜을 전하여 불국토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