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2-09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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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3) - 법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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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3)
법철 스님
앞서 언급했듯이, 진정한 종교인은 중생의 탐욕과 미혹을 깨우쳐 주고, 중생의 고달픈 삶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데 역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중생도 종교인에게 신통력적인 피화구복을 해서는 안된다.
성종이 만난 불우한 유생은 운명에 관운(官運)이 없었던 것 같다.
남자의 운명에 관운이 없으면 서울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도 관직에 나아갈 수가 없고, 유생처럼 매번 시험장에만 가면 낙방의 고배만 들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일찍이 자신이 무관의 운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관계에 진출할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삶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
여자의 운명에 관(官) 이 없으면, 남편이 없다.
절세미인이라도 관이 없으면, 혼자 살아야 하고, 만나는 남자는 기껏해야 남의 남자이다.
무관(無官)의 여자는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다.
무관여자 가운데는 절세미인이면서 착한 여자가 많다.
또한 여자는 어릴 때는 아버지라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하고, 젊은 시절에는 남편이라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하고, 노년에는 아들이라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
여자의 팔자에는 남자가 돈을 벌어다 주어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무관이면 돈을 벌어다 주는 남자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 경제적으로 고통속에 신음하며 눈에는 슬픔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을 것이다.
무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일점 재복이 없는 운명이다.
재복이 아예 없거나 도중에 사라진 남녀들이 노숙자로 전락하고 만다.
또한 남녀의 운명 모두 무관과 재복(財福)이 없으면, 설사 서울대, 동경대, 하바드, 버클리, 옥스포드 등의 극내외 명문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수재라 해도 앞서의 가난한 유생같은 한빈(寒貧)한 한사(寒士)로서 고통받으며 인생을 살아간다.
깨닫고 보면 역시 자신이 전생에 지어논 복이 없는 탓일 뿐이다.
필자가 산위에서 산아래를 내려다 보면, 부지기수의 선남선녀들이 자신이 만든 전생의 정업, 숙명 때문에 울고 웃고, 죽어가고 있었다.
정업을 피하여 전화위복을 위해 사찰과 교회, 성당 등에 가서 역시 피화구복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출처] (법문) 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3) - 법철 스님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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