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2-02 22:42
|
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2) - 법철 스님
|
|
 조회 : 4,302
|
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2)
법철 스님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인간은 왜 인간들의 운명이 천차만별인지 화두의 의문이었다.
수명의 요수장단(夭壽長短), 빈부귀천(貧富貴賤) 등….
진정 인간의 운명은 불가해(不可解)다.
만약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있어 인간들의 운명을 천차만별로 만들었다면 창조주는 때려죽일 장난꾼이 분명하다.
왜 모든 인간들을 행복하게 운명을 조작 설정해놓지 않았을까? 지구상에는 부지기수의 남녀군상들이 건강과 행운을 추구하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모든 인간은 외모와 생각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개인의 인생을 관찰해보면, 운명은 천차만별이다.
바꿔말해 인간은 모두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개개인의 운명은 행과 불행이 천차만별인 것이다.
남녀를 통틀어 모든 아기는 부모의 축복속에서 태어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전생의 정업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불행이 찾아온다.
그 불행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마치 태평양에서 배가 속절없이 침몰하듯 고통속에 신음하며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아아,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은 축복속에 태어나지만, 생자필멸(生者必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무섭고 두려운 어두움의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르며 촌각을 사는 게 인생이다.
모든 종교는 죽음의 공포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음, 나아가, 모든 공포가 없는 오직 행복만 충만해 있었다면 종교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인들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일까?
첫째, 삶의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역할이어야 한다.
둘째, 무지몽매의 미혹속에서 헤매며 자신도 죽이고, 타인도 죽이려는 사람들을 깨우쳐 미몽타파의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
셋째, 끝없이 욕망의 늪에서 헤매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가치관을 심어주어 적은데서 만족하며 인생을 사는 법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종교인들은 진정한 역할을 하지 않고, 소위 중생의 탐욕과 미혹을 이용하여 치부를 하려고 한다.
“부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해주겠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해주겠다.”
“전지전능한 신으로부터 복을 받게 해주겠다.”
“그대가 십만원을 헌금하면, 10억, 100억의 복을 받게 해주겠다.”
바꿔말해 중생의 탐욕과 미혹을 이용하려는 찬송가를 부르고, 찬불가를 부르며 목탁을 두두리며, 하나님을 빙자한 설교, 부처님을 빙자한 설법을 하면서 고달픈 중생의 호주머니를 털려고 작심해서는 안 된다.
[출처] (법문) 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2) - 법철 스님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작성자 성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