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2-02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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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1) - 법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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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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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1)
법철 스님
정업은 곧 숙명이다.
정업은 누가 정하는가?
우주에 변만하신 법신불 부처님이?
전지전능한 신이?
절대 아니다.
인간 개개인, 나아가 일체 생명체는 전생에 스스로 지어서 금생에 받는 것이 정업이요, 숙명이다.
전생이라는 단어, 까마득한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초전도 전생이다.
일초후도 내세이다.
내세를 위해서 그대는 무엇을 했는가?
일초 후의 행복한 내세를 위해서 일초전의 전생에 선행의 인연작복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야 한다.
불경에는 도처에 정업사상으로 충만해 있지만 공자도 인간의 운명을 두고 ‘만사는 다 정해졌는데 부생이 헛되이 바쁘도다(萬事皆有定 浮生空自忙)’라고 말했다.
이 말은‘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는 부처님 말씀과 통한다.
정업에 대한 예화를 들어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조선조 성종 때, 성종은 민생을 직접 알아보기 위해 밤이면 가끔씩 변복하여 수수한 선비차림으로 변복하고 수행원도 역시 변복시켜 데리고 한양의 이 골목 저 골목을 시찰하기를 좋아했다.
어느 겨울날 눈 내리는 밤, 성종은 변복하여 선비 차림으로 민생을 시찰하다가 남산 아래의 초라하여 쓸쓸한 마을에 이르렀다.
밤이 깊어 모든 집들은 소등하여 깊은 잠이 들었는 것 같은데 유독 아직도 불이 켜진 집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집은 가세가 옹색한지 쓰러질듯 기울어져 가는 오막살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잠을 자지 않고 등잔불을 밝히우고 유생이 낭낭한 음성으로 유경(儒經)을 읽고 있었다.
성종은 오막살이 집 앞에서 소리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글읽는 소리를 듣고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성종은 나직히 소리쳐 오막살이의 집의 주인을 찾았다.
글을 읽는 유생은 문밖 소리를 듣고 글읽기를 중단하고 싸립문 앞에 다가왔다.
유생은 손에게 물었다.
“뉘시온지요? ” 성종이 얼굴에 화기를 띄고 다정하게 대답했다.
“길을 지나다가 글 읽는 소리에 감동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주인장을 찾았소이다.잠시 대화를 나누었으면 하는데 허락해 주실런지요.”
유생은 추호도 꺼리김없이 반갑게 밀했다.
“찾아주신 것은 고맙습니다만, 워낙 집이 누추해서… 괞찮으실는지요?”
성종이 유생의 방에 들어가니 엄동설한에 방안은 불기가 사라진 냉방이었다.
뼛골이 시릴 지경의 추운 방에서 유생은 잠을 자지 않고 오직 면학에 정진할 뿐이었다.
유생은 갑자기 눈속에 나타난 선비를 예의 바르게 영접하면서 대접할 것이 없다고 부끄러워하면서 따뜻한 물과 삶은 고구마 몇 개를 송구스럽게 내놓았다.
등잔불에 자세히 보니 유생은 40이 훨씬 넘어 보였고,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고 영양실조로 뼈만 앙상했다.
성종은 유생과 수인사를 나누었다.
성종이 주인에게 큰절을 하면서 먼저 통성명을 했다.
“저는 이준(李俊)이라고 합니다.”
유생도 맞절을 하면서 통성명을 했다.
“저는 박몽일(朴夢逸)이라고 합니다.”
성종은 자리에 정좌하여 유생이 밤이 깊도록 면학에 정진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추운 겨울 밤, 잠을 자지 않고 성현의 글을 읽는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과거에 응시하여 조정에 출사하는 것이 자신과 가문을 일으키는 유일한 길이기에 공부를 하는 것이지요.”
“연세가 들어보이는군요.”
유생은 얼굴을 붉히면서 탄식하듯 말했다.
“사실은 이십대 초반부터 번번히 과거에 응시를 했었지요.”
고구마를 입에 베어 물면서 성종은 재촉했다.
“과거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알고 있는 문장이 과거장에 가서 응시하는 시간만 되면 깜깜절벽이 되어 답안의 글귀가 떠오르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번번히 낙방의 고배를 마시다보니 오래전에 불혹의 나이를 넘기고 말았지요.
이제 자식 또래인 제자들과 함께 과거장을 찾으니 부끄러운 일입니다.” 성종이 안타까운 얼굴이 되어 말했다.
“과거 시험장에만 가면 깜깜 절벽이라니 무슨 귀신의 조화 같군요.” “소생의 과거준비 때문에 가산은 날로 기울어져 가고, 아내마저 작년에 고생 끝에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아들 하나 있는 것은 친척집으로 보내어 밥을 먹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혼자 사십니까?”
“가난하여 봉제사는커녕 소생의 호구지책도 작은 훈장 노릇으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성종은 구중궁궐에서 수많은 비빈들과 산해진미로 살고 있는 자신과 추운 겨울날, 불기 없는 방에서 혼자 허기진 배를 안고 글을 읽는 가난한 유생을 비교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은 외모도 비슷하고 생각도 비슷하다.
하지만 타고난 운명이 다른 것이고나….
내가 이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줄 수는 없을까?)
성종이 쓸쓸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유생이 탄식을 토하듯 말했다.
“이제 나이도 있고, 제자들 볼 면목도 없고 해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과거에 응시하고 싶습니다.”
성종은 안타까운 얼굴이 되어 반문했다.
“그 때도 낙방한다면 어찌하시겠오?”
유생은 길게 탄식을 하고 말했다.
“그때도 낙방이면, 운명으로 알고, 서당에서 후진양성의 훈장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성종은 짐짓 고구마를 먹으면서 유생의 말에 가슴이 아파왔다.
유생의 소원을 이뤄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잠시 방법을 생각하던 성종은 정색을 하면서 유생에게 이렇게 귀뜸했다.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3일 후에 어명으로 인재등용을 위해 별과(別科)의 시험이 있다 합니다.
시험에 응시하시겠습니까?”
유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3일 후, 별과시험이 있다는 것은 금시초문입니다.
어디서 그 소식을 들으시었습니까?”
“저의 친척이 대궐에서 일하고 있어 내밀한 소식을 들었지요.”
“사실이라면 반가운 소식입니다.”
성종이 주위를 살피며 비밀을 통보해주듯 나직히 속삭이듯 귀뜸했다.
“절대 비밀이오만, 별과의 시제(詩題)와 답안지를 가르켜 드릴 터이니 꼭 기억하여 그대로 적어 시험관에 제출하면 반드시 공(公)의 소원을 성취할 것입니다.
이것은 대궐의 기밀사항이니 반드시 비밀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성종은 유생에게 지필묵을 빌려 시제와 답안지를 적어주고, 유생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시제와 답안지를 받아든 유생은 어안이 벙벙했다.
대궐에 돌아온 성종은 변복을 한 내시를 통해서 이름을 철저히 숨기고, 유생의 영양실조를 걱정하여 쌀가마와 고기를 푸짐히 배달케 해주었다.
성종은 가난한 유생이 조속히 원기를 회복하고 꼭 소원성취를 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유생은 과연 3일 후, 저자거리의 벽보에서 어명으로 과거시험과 다름없는 별과 시험이 있다는 방문(榜文)을 눈으로 확인하고 놀라워했다.
시험이 있는 날, 성종은 시험관에게 자신이 유생에게 미리 알려준 시제와 답안지에 무조건 장원급제 하도록 내밀히 지시해놓고 있었다.
이윽고 별시에 장원급제자가 있었다.
성종은 장원급제자를 어전으로 불렀다.
그러나 성종이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성종앞에 부복하여 인사를 올리는 장원급제자는 뜻밖에도 기다리는 유생이 아닌 젊은 선비였다.
성종은 놀라운 마음으로 유생에 대해서 하문했다.
장원급제자는 부복하여 진실하게 연유를 아뢰었다.
“저는 그분의 제자이옵니다.
스승께서 오랜만에 푸짐한 식사와 고기를 잡수시고는 갑자기 배탈이 심하여 몸져누워 도저히 과거장에 나올 수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스승께서는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와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하시며 저에게 대신 시험장에 나가야 한다고 하시었습니다.”
사유의 전말을 들은 성종은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탄식을 토하며 독백하듯 말했다.
“만사는 다 정해졌다’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니었구나.”
성종은 두고두고 장탄식속에 유생의 운명을 아쉬워했다고 전한다.
[출처] (법문) 정업(定業)은 면치 못한다(1) - 법철 스님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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