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1-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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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화두 십종병(十種病)(3)
구산 스님
여덟째, 공안(公案)을 생각할 줄 알고 봉(棒)을 들 줄 아는 이놈이라 하지 말라.
공안이 순숙(純熟)해져서 자기 마음이 해태굴(懈怠窟)에 빠지면 올바른 경지에 나아가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나 취모리(吹毛利, 털도 자르는 아주 예리한 칼로 지혜를 상징한다.)를 일으켜서 온갖 역경을 돌파하고 활연히 깨쳐 선지식을 찿아 인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한 생각 방황하여 털끝만큼의 차이가 있으면 천지현격(天地懸隔)이라, 도무지 진취가 없게 된다. 이때에 생각하기를 도라는 게 별것 아니며 환경 따라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것은 인적위자(認賊爲子)라, 도둑놈을 아들 삼는 것과 같은 병이다.
아홉째, 문자로 인증(引證)하거나 인용(引用)하지 말라.
대도(大道)는 유식과 무식을 초월한다.
요즈음 공부하는 사람들이 간혹 문자에 집착하여 박학다문(博學多聞)하고 의리로 따지고 생각으로 헤아려 아는 것이 부처라고 인정하지만 이 같은 사고방식은 바로 부처님과 그 경전을 비방하는 것이다.
종문(宗門) 중에서는 천계만사량(千計萬思量)이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이라, 모든 사량분별이 불 속의 한 점 눈과 같아서 설사 깨쳤다 하더라도 그 깨친 곳에 심천(深淺)이 있는 것이다.
깨친 후에도 깨달았다는 생각인 각견(覺見)과 내가 부처라는 생각인 불견(佛見)과 중생이라는 생각인 중생견(衆生見) 등을 깨끗이 씻어 버려야만 한다.
그런데 하물며 사량계교와 의리로써 깨달음을 이해하려는 치견(痴見)은 입해산사(入海算沙)니 소지장(所知障)이요 문자병(文字病)인 것이다.
열째, 미정(迷情)을 가지고 깨쳐질 때를 기다리지 말라.
수행을 스스로 가장하지 말라.
미정을 가지고 깨쳐질 때를 기다리지 말라 함은 공부한다는 납자가 본참공안(本參公案)을 잡고서 죽을판 살판 노력하여도 무시겁래(無始劫來)로 익힌 습기 때문에 업력은 강하고 혜력(慧力)은 약하여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어렵거늘 애써 정진하는 마음은 희박하고 일상수용(日常受用)에만 팔리고 혹은 안일주의에 빠져서야 어찌 공부하는 자세라 하겠는가?
설사 결제중에 약간의 정진을 했다손 치더라도 해제 석 달 동안에 동분서주하는 십자가두(十字街頭)의 생활을 하니 자연 결제중에 익힌 정력(定力)이 약화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다음 결제 때는 공부를 새로 시작하는 셈이 되고 만다.
오늘도 이만 내일도 그만, 금년도 이대로 명년(明年)도 그대로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에 잠깐 사이에도 누구나 죽음의 문에 이르는 것이다.
미심(迷心)으로 오도(悟道)를 기다렸는데 사문(死門)에 먼저 이르니 그때야 후회한들 무엇하랴.
이것이 미정을 가지고 깨쳐질 때를 기다리는 살림살이인 병이다.
건혜미능면생사 일예재안화란타(乾慧未能免生死 一穢在眼花亂墮)
만인애가갱진보 연게무법변칭추(萬仞崖邊更進步 演揚無法辨稱錘)
생사고 벗어남에 알음알이로 미치랴
금싸라기 눈에 들매 허공꽃이 쏟아지네
만 길 벼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
걸림 없는 법 연설하고 남의 눈을 저울질하리.
[출처] 구산 스님 - 무자화두 십종병(十種病)(3)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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