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1-01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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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선(禪)과 관법(2)
법정 스님
화두선과 관법은 어떤 것이 더 좋고 못한 우열이 없습니다.
관법은 부처님 당시부터 행해진 수행법으로 지금도 동남아 상좌부 불교권에서는 널리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화두선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중국의 선불교에서 시작된 수행법으로 한국 불교에서도 이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화두선은 최상승선(最上乘禪)이고 관법은 소승선(小乘禪)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런 말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떤 방법의 수행을 하건 간에 최상승의 심지를 계발, 지혜와 자비가 충만해서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혜명(慧命)을 잇고 있다면 그는 최상승선을 성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화두선을 하건 관법을 하건 보리심을 발하지 않고 자기 한몸의 깨달음만을 위해 앉아 있다면 그는 바로 소승선을 닦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최상승선과 소승선의 갈림길은 화두선이냐 관법이냐에 있지 않고, 수행자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참구하며 어떻게 회향하느냐에 달린 것임을 명심하십시오.
예전 사람들은 단순하고 순박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선사들의 말씀이나 문답이 그야말로 참구의 극치인 화두(話頭)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소란스럽고 거칠디거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하게 몰입하는 수행법이 보다 적합할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몰입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마음의 흐름을 살피는 일이 요긴합니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마음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살피는'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에 따르지 않고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염처경(念處經)》에서 부처님이 친히 설한 바입니다.
선법(禪法)을 처음으로 중국에 전한 것으로 알려진 달마 스님, 그 분의 가르침에 `마음을 살피는 이 한 가지 일이 삶 전체를 이끌게 된다'고 한 것도 바로 이를 가리킨 말씀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달마 스님은 관법을 몸소 닦고 그걸 가르쳤습니다.
그때는 화두선이 나오기 이전입니다.
달마 스님이 관법을 닦고 화두선을 닦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소승선자로 치면서 최상승선을 체험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과 옛 선사들은 한결같이 말씀하십니다.
`본래성불(本來成佛)'이라고.
이 말씀이 진실이라면 그럼 우리는 무엇 때문에 새삼스레 좌선을 하면서 애써 닦고 있습니까?
이에 대한 답을 옛 스승들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애써 정진하는 것은 새삼스럽게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래의 깨달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이를 본증묘수(本證妙修)라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닦지 않으면 더럽혀지기 때문입니다.
깨닫기 위해서 닦는 것과 깨달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정진을 한다는 입장은 그 방향이 아주 다릅니다.
어떤 바탕 위에서 닦을 것인가는 각자의 수용능력에 달렸습니다.
아무쪼록 이 여름철 안거에 그 어떤 말에도 속지 말고 몸소 체험하고 스스로 확인하면서 그윽한 삼매의 꽃을 피우기 바랍니다.
[출처] 법정 스님 - 화두선(禪)과 관법(2)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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