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0-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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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나’ 버리고 본래 부처를 보라(1) - 설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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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나’ 버리고 본래 부처를 보라(1)
설우 스님
인연따라 생기고 인연따라 사라지니 세상엔 고정불변한 영원한 실체는 없다.
허공은 허공일 뿐 어둠이 오면 어둡고밝음이 오면 밝아진다.
자성자리도 그러하다.
오늘 법문의 주제는 ‘법을 바로 보는 안목을 가지자’입니다.
여러분, 법을 바로 보는 지혜가 무엇일까요.
법을 바로 보는 안목을 부처님 말씀에서 찾는다면 정견(正見)이 될 것입니다.
바로 본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깁니다.
무엇을 바로 봐야 할까요.
바로 보는 그 의지처는 또 어디일까요.
부처님은 삼라만상, 일체현상이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변해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상(無常)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못하다는 뜻이지요.
제법(諸法)은 연생연멸(緣生緣滅)이라.
인연 따라 생기고 인연 따라 사라집니다.
이처럼 인연 따라 생기고 멸하기 때문에 나라는, 자기라는 고정불변하고 영원한 실체 또한 없습니다.
이것을 무아(無我)라고 합니다.
이러한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이치를 알면 바로 안락을 얻게 됩니다.
이 도리가 바로 삼법인(三法印)입니다.
이런 까닭에 팔만사천법문을 하나로 줄이면 바로 삼법인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삼법인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주춧돌로 해서 모든 것이 거기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삼법인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귀결처는 또 무엇일까요.
역대 조사와 선사들은 한 소식 깨치고 보니 우리 모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불성을 갖춘 부처였다고 말합니다.
‘본래부처’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또 막막해 집니다.
지금 내가 과연 부처인가.
우리 모두는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잡니다.
이런 이치는 부처님도 똑 같습니다.
이것을 불성으로 설명하면 불성의 자리는 부처나 중생이나 기능적으로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중생과 부처의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요.
효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일체 중생 모두를 당신과 같은 부처로 봅니다.
불성으로 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중생들의 마음속에는 불성 대신 중생심이라는 아주 ‘잘난 놈’이 하나 들어앉아 분별하고 사량하면서 주인노릇을 합니다.
이 잘난 놈 때문에 나를 괴롭히고 남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런데 요상한 것은 이 잘난 놈이 실체가 없습니다.
우리가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일 뿐입니다.
[출처] 설우 스님 - 거짓 ‘나’ 버리고 본래 부처를 보라(1)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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