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0-0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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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과 비방(2)
삼중 스님
또 한 번은 모 방송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프로듀서가 내게 오더니
“어떤 스님이 오셨었는데 스님에 대해 심한 비난을 하시더군요.
일부러 찾아와 그렇게 심하게 험담을 하고 가다니….
저도 불쾌해서 혼났습니다.”
라며 내게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말했다.
“허허, 그 사람이 내 허물을 아직 다 모르는 모양이군요.
나는 그 사람이 말한 허물보다 열 배나 더 많은 약점과 허물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애써 찾아와 지적을 해주시니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해야 할 일이지요!”
그렇다.
사실 나는 허물이 많으며 약점 또한 많은 사람이다.
허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반성할 것이 많다는 이야기요, 앞으로 고쳐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살다보면 남들에게 칭찬보다는 비난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비난을 받게 되더라도 상대방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다 내 허물이니 어쩌겠는가.
그럴수록 내 자신을 한번 더 뒤돌아보고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마음이 된다.
나는 무엇이든 솔직하고 정직하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이러다보니 남들에게 약점을 잡히는 일도 있고 때론 이처럼 본의 아닌 오해를 받게 된다.
육조 혜능 대사는, ‘지나간 잘못에 대하여 반성하고 앞으로는 두 번 다시 허물을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으면 진정 참다운 불자라 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수행자로서 허물이 많다는 것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잘못된 점은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혹 사람들 중에는 남의 허물을 들춰내 비난할 뿐만 아니라 재미삼아 중상하거나 모략하는 이들이 있다.
아이가 장난삼아 무심히 돌팔매질을 한다 치자.
이럴 경우 돌을 던지는 아이야 재미로 한다 하겠지만 지나가던 개구리가 그 돌에 맞아 죽는다면 어찌될 것인가.
남을 중상한다는 것은 돌을 던져 무고한 개구리를 죽게 만드는 아이의 행동과 다름이 없다.
때론 본의 아니게 한 사람의 목숨마저 앗아갈 수 있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탈무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남을 헐뜯는 것은 살인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살인은 한 사람밖에 죽이지 않지만, 험담은 반드시 세 사람을 죽인다.
즉 험담을 하는 사람과, 그 험담을 반대하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 또 그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사람이다.
남을 중상하는 것은 흉기로 사람을 해치는 것보다 더 죄가 크다.
흉기는 상대방의 가까이가 아니면 해치지 못하지만 중상은 멀리서도 사람을 해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불이 붙은 장작은 물을 끼얹으면 속까지 꺼져 식게 되나 중상을 받아 화난 사람의 마음속은 끄지 못한다.
마음이 선량하더라도 입이 험한 사람은 마치 훌륭한 궁전 앞에서 악취를 풍기는 제혁공장과 같다.
사람에게 하나의 입과 두 개의 귀가 있는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하라는 뜻이다.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남의 험담을 듣지 않기 위해서이다.
험담을 듣게 될 때는 급히 귀를 틀어막아라.
물고기는 항상 입으로 낚인다.
사람도 역시 입으로 걸려든다.
이처럼 남을 중상하고 모략하는 것은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큰 악을 초래한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이로 인해 다치게 되니 이보다 더 무서운 흉기가 어디 있겠는가.
본래, 흐르는 탁한 물에는 형상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고여 있는 잔잔한 맑은 물만이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 준다.
오래도록 앉아서 맑은 물속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자.
[출처] 삼중 스님 - 중상과 비방(2)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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