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2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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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삼매 들게되면 깨달음 얻을 수 있어(2) - 보광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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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삼매 들게되면 깨달음 얻을 수 있어(2)
보광 스님
그는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어려운 정진방법을 선택하는 난행도(難行道)와 쉬운 방법인 이행도(易行道)로 구분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이행도인 부처님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도 불퇴전지인 야유월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다겁생래 동안 닦은 무량한 수행력과 한량없는 중생구제의 본원력의 공덕력에 의해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용수보살은 염불로서 현세에 아유월치에 이르러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세친보살은 〈왕생론(往生論)〉에서 극락왕생행으로 찬탄문(讚歎門), 예배문(禮拜門), 작원문(作願門), 관찰문(觀察門),회향문(回向門)의 오염문(五念門)을 설하면서 염불을 찬탄문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용수가 염불로서 현세에 아유월치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으나, 세친은 염불로서 내세에 왕생하여 가능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중국의 담랑(曇鸞),도작,선도 등에게도 계승되었다.
칭명염불.관념염불 수행으로 부처님 친견.견성 가능 간절한 신심과 불보살 본원력.가피력에 힘입어 성불 그런데 〈무량수경〉,〈관무량수경〉,〈아미타경〉 등의 정토삼부경과 〈반주삼매경〉에서는 염불로서 견불(見佛)과 왕생을 설하고 있다.
정토계 경전에서는 견불은 깨달음으로 여기며, 왕생은 성불로 보고 있다.
〈무량수경〉의 제18원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에서는 오역죄와 정법을 방방한 자는 제외하고 누구나 십념염불(十念念佛)로 왕생이 가능하다고 설하며, 왕생은 삼배구품(三輩九品)에 따라서 왕생한다고 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왕생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아미타불의 설법을 들어서 성불을 보장받으며, 결국은 모습과 이름이 모두 아미타불과 같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동명동호(同名同好)가 되어 모두가 아미타불이므로 부처와 극락성중이 둘이 아님을 설하고 있다.
한편 〈관무량수경〉의 제8 상상관(像想觀)에서는 “제불여래는 법계신(法界身)이므로 일체중생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느니라”고 하면서 “마음이 부처를 지으면, 마음이 곧 부처(是心作佛是心是佛)”이라고 한다.
즉 중생의 마음이 부처의 마음으로 바뀌면 부처의 마음은 곧 부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마음이 곧 부처 (是心是佛)’라고 하는 말씀은 〈관무량수경〉과 〈반주삼매경〉에서 나오며, 이러한 말씀이 선종에 영향을 미쳐서 선종에서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은 ‘마음이 부처를 지었을 때 마음이 부처’라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부처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는 그대로 중생임을 명심해야 한다.
“부처님을 형상으로 관할 것”을 설하면서, 관념염불로서“무량억겁 동안의 생사의 죄를 소멸하고 현재의 몸으로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성취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염불삼매에 들게되면, 견불을 하게 되며, 견불(見佛)은 견성(見性)과 같은 경지인 깨달음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제9관인 진신관(眞身觀)에서는 “불신을 관하면, 불심을 본다(觀佛身故 亦見佛心)”고 한다.
따라서 부처님의 모습인 불신을 친견하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인 불심을 보게되며, 이는 부처님의 성품인 불성을 보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정토교에서는 염불삼매를 성취하면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자신이 의심나는 것을 부처님께 물어보게 되며, 부처님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게 된다.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말법시대의 중생들이 친구의 얼굴을 보기는 쉽지만, 친구의 마음을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출처] 보광 스님 - 염불삼매 들게되면 깨달음 얻을 수 있어(2)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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