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말씀

작성일 : 20-08-26 09:59
어느 누가 아프지 않으랴(1) - 법인 스님
 글쓴이 : 기획원장
조회 : 4,168  
어느 누가 아프지 않으랴(1)

​

​법인 스님

​

​“어떤 스님이 좋습니까?”

요즘 내가 한 잔의 찻값으로 상대방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대화의 끎말(=이끄는 말)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종교, 친소에 관계없이 이 말이 나만의 ‘일상적 질문’이 된 것은 확고한 승려 교육의 목적과 지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 대중이 바라는 수행자상을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그 대답은 ‘대동’하고 ‘소이’하다.

똑똑하고 친절한 스님, 내 말을 정성으로 들어주는 스님, 근엄하기보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스님, 나를 성숙시켜 주는 스님, 말씀과 행동이 일치하는 스님, 늘 그 자리에 있는 스님, 내 삶의 중심과 나침반이 될 수 있는 말씀을 해주는 스님, 현실성 있는 법문을 해주는 스님, 사회와 역사 의식이 있으면서 일상의 삶은 절도 있는 소박한 스님, 원칙을 지키고 공평무사하며 공심으로 일하는 스님, 옳고 그름이 분명한 스님, 내 삶의 위안과 힘이 되어주는 스님 등등.

대동(大同)은 지혜와 자비의 양 날개를 갖춘 수행자였으며, 소이(小異)는 저마다의 염원에 응답하는 시대의 관음보살이요, 보현보살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은 이후 나는 한동안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혼돈을 경험했다.

지극히 당연한 정답이 왜 이리도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왜 이런 답들이 익숙한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설고 새삼스럽기만 한 것인지….

며칠 동안 켜켜이 쌓인 생각의 나이테를 정리하면서 어색하고 머쓱한 그 원인을 찾게 되었다.

그건 세간과 출세간이 바라보고 있는 지점의 차이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었다.

지금도 우리 출가 수행자들은 수행, 깨달음, 직지인심, 견성, 성불, 간화선, 돈오돈수 등 이런 언어와 어법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이 언어들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데 사고와 삶의 지향이 실려 있다.

간간이 말하는 세간을 향한 보시와 자비는 언저리의 일시적 방편 언어이다.

그러나 세간의 이웃들은 실질적인 일상과 별로 상관 없어 보이는 출가 수행자의 중심언어와 가치지향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종교 수행자들에게서 참되고 행복한 삶의 지혜와 답답하고 힘든 현실의 위안과 격려를 얻고자 한다.

세간의 벗들은 큰 깨달음을 얻은 큰스님도 좋지만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운 낯선 수행자보다는 겸허하고 따뜻한 시선의 친근한 스님에게 위로와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이 시각, 나에게는 많은 반성과 자책이 따른다.

수레는 분명 두 바퀴로 목적지를 향해 굴러간다.

엄정하면서도 친근할 수 있고, 침묵하면서도 귀 기울일 수 있으며, 여럿이 함께 할 수 있으면서도 홀로 있을 수 있고, 비우면서도 나눌 수 있음에도 왜 우리는 한쪽으로만 시선을 고정한 채 살았을까?

눈은 뜨면 안팎 모두를 볼 수 있고, 귀는 열면 안팎 모두를 들을 수 있는데 왜 눈과 귀를 반쯤만 열고 살았을까?  

결국 이것은 세상에 대한 연민과 자애의 부재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더불어 존재하고 더불어 생동한다는 연기의 질서에 철저하지 못한 소치이다.

고통 받고 있는 중생을 위해 헌신과 자비를 실현한 부처님의 삶을 올바로 보지 못하는 무지이고 게으름이리라.

그러고 보니 오랜 세월 수행과 깨달음에 짓눌려 자비심을 그리 염두에 두고 살지 않았던 것 같다.

[출처] 법인 스님 - 어느 누가 아프지 않으랴(1)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 교구사찰소식
  • 불교용어사전
  • 종무자료실
  • 사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