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3-02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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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부처다(2) -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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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부처다(2)
법상 스님
이쯤에서 가만히 생각해 보자.
광고판이나 자동차 엔진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몫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불교에서는 사람 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 나무와 풀과 개미와 이끼들조차 모두가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며, 그들을 결코 인간 아래에 두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과 인간은 다르지 않다.
인간이 인간에게 죽음을 당할 수 있듯, 인간이 동물에게도 죽음을 당할 수 있고, 식물에게도 심지어 위에서 보았듯 무정물에게도 죽임을 당할 수 있다.
그들과 인간은 인연법의 차원에서 서로 동등하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고장 나기 직전의 차였는데 주행 중에는 괜찮았고, 다행히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차량이 고장 났다”고. 그래서 사고 없이 집까지 무사히 잘 왔다고 말이다.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아주 좋은 차를 타고 있었으면서도 차량이 문제를 일으켜 집까지 오는데 몇 시간이 더 걸렸을 수도 있다.
늦게 오는 것도 정확히 그럴 만한 인연이고, 사고 없이 빨리 오는 것도 그럴 만한 인연이다.
사업가가 아주 중대한 회사의 업무로 해외 사업가와의 미팅에서 차량 사고로 늦게 가는 바람에 그 큰 투자 사업을 망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차량이 하필이면 왜 그 중요한 순간에 고장이 나는가.
차량 결함만 아니었어도 그 사업가는 대박이 났을 것인데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차 고장만 아니었다면 완전히 대박이 났을까.
혹시 법계에서 그 사업이 대박이 나기에는 아직 이른 때라서, 아직 그 사람이 성숙하지 않았거나, 복이 부족했거나, 아직은 그 그릇이 작았거나 하는 이유로 차량 고장이라는 인연을 통해 그 사업을 뒤로 미룬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바로 그 차는, 차의 고장난 엔진은 온전한 법계의 이치에 따라 아주 여법한 진리를 수행하게 된 것이리라.
사람만 법계의 이치를, 인과의 이치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유정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처럼 무정물 또한 법계의 일부로써, 진리의 일부로써 바로 그 인연법이라는 우주적인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기 보다는 모든 것을 차의 탓으로 돌린다.
흥분해서 차 바퀴를 발로 걷어차거나, 혹은 그 차를 폐차시키고 새 차를 사는 것으로 울분을 풀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차의 문제가 아니라 순수한 내 문제다.
차가 바로 그 때 고장이 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우주적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이 법계 우주가 각본을 쓰고 그 차는 단지 조연을 했을 뿐이다.
아니 법계와 차와의 공동감독에 공동주연의 연극이라는 편이 옳겠다.
어쨌든, 주연이었든 조연이었든 내 사업을 망친 직접적인 몫을 한 녀석은 자동차다.
그러니 자동차를 실컷 미워해도 좋다.
그렇지만 자동차를 미워하는 만큼 법계의 일부분인 자동차도 나를 미워할 것이다.
손가락이 내 몸의 일부분이듯, 자동차는 이 우주법계의 일부분이다.
[출처] 법상 스님 - 지금 내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부처다(2)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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