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2-2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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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과 보시의 삶은 좋은 인연 만드는 길(3) - 범행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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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과 보시의 삶은 좋은 인연 만드는 길(3)
범행 스님
1953년경에는 서울 선학원에서 당시 조실로 계시던 금오스님을 은사로 모시게 되었어요.
당시 만암스님이 종정으로 계시면서 수행승(비구)과 교화승(대처)의 거주 사찰 지정문제로 종단내의 의견 대립이 심각했습니다.
이해 8월 선학원에서 열린 제1차 수좌대회가 파한 뒤 효봉, 동산스님 등과 함께 정화의 실천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지요.
금오스님은 늘 나보고 참선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당시 주력수행에 몰두하던 터라 참선이 잘 되지 않았어요.
몇년 뒤에는 마곡사 토굴에서 정진했는데 주력을 통해 삼매나 정(定)에 드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마치 참선을 할 때 화두를 참구하듯이 항상 외우면서 수행의 요체로 삼았지요.
마곡사 토굴에서 1년정도 지냈는데 느낌이 이상해 내려가 보니 정화운동이 시작되었어요.
봉은사 주지 등을 맡으며 정화운동에 참여했어요.
당시 선학원에는 경지가 높은 쟁쟁한 스님들이 많아서 자극을 많이 받았습니다.
동산스님은 복이 많은 분이었고, 효봉스님은 덕이 많은 분이었어요.
금오스님은 당시에는 보기 드물게 동진출가한 청정 비구이셨죠.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화두는 어떻게 드느냐 하면 일체 경전을 다 본 후에 의심을 내라’는 등의 결론을 내렸어요.
그러던 중 1968년 10월8일에 금오스님이 세수 73세로 입적하셨어요.
이후에는 선학원 이사장으로 계시던 혜암스님을 모시고 공부를 했어요.
혜암스님은 어디서나 설법하여 사람들을 교화하셨어요.
70세가 넘도록 매일 새벽 108배의 참회예불을 중단하지 않으셨죠.
특히 신도나 청소년을 대할 때마다 신의와 효도를 강조하여 도의(道義)재건운동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혜암스님 역시 나를 참선으로 이끌기 위해 애를 쓰셨어요.
하루는 스님께서 <반야심경>에 대해 물으며 ‘부처 불(佛)자 보다 더한 곳이 있으니 일러라’ 하셨는데, 나는 답을 못했어요.
그로부터 ‘내가 안다는 게 아무것도 아니구나. 주력수행만 해서는 안되겠구나’ 느꼈지요.
그때부터 참선수행에 본격적으로 몰두했는데 <반야심경>의 이치를 깨칠 수 있었어요.
‘마음이 곧 부처(心則是佛)‘ 임을 확신하게 된 것이예요.
혜암스님은 <반야심경>에 대한 나의 답변이 옳음을 인가하고 ‘효일(曉日)’이란 호와 전법게를 내리셨어요.
은산철벽이 터지면 화두가 술술 풀려요.
경전과 선어록을 봐도 모르던 부분이 저절로 환하게 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별 것 아닌 것이 수행자들을 가로막고 있는 거예요.
‘오도의 세계’ 첫 관문을 통과한 뒤에는 ‘놓고 쉬는’ 공부를 해야 해요.
‘내가 깨쳤네, 내가 큰 스님입네’하는 상을 일체 버려야 해요.
참선이란 것은 본디 내 마음자리를 바로 보는 거예요.
거울의 때를 벗기면 자기 얼굴이 환하게 보이듯이 본래 나만 남는 거예요.
그 경계에 들어서면 춤도 춘다고 하지만, 그때부터가 중요해요.
‘안다고 하는 그 생각’ 마저 버려야 해요.
백양사의 서옹스님처럼 무심도인(無心道人)이 되어야 해요.
참도인은 어린애처럼 즐거울 뿐 아무런 상이 없는 거예요.
보림(保任·保護任持의 준말로 깨달은 이가 그 경지를 잘 보호해 지켜가지는 것)이란 게 딴 게 아니예요.
수억겁 동안 쌓인 습을 지워내는 작업이예요.
미세한 식·색·명·리(食色名利)·잠 등 오욕락을 제거하는 것이지요.
죽을 때까지 쉬지 않아야 해요.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배부르게 먹으면 성욕이 발동하고, 권력을 잡으면 재물을 모으려 해요.
그래서 밥을 적게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요.
50여년의 수행으로 얻은 결론은 ‘절대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마거사의 불이법문(不二法門)과도 같은 것이죠.
선악과 생사 등 모든 가치는 둘이 아니요,
그 어떠한 것도 절대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의 상대성원리를 발표했지만 불법은 정신과 물질, 모든 것이 절대성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이 보는 선악 등 온갖 분별이 절대성을 갖지 못해요.
정치인들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에 처했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예요.
그렇게 될 만한 이유가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이란 말이지요.
누구의 잘 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어요.
오욕락이 쌓이고 탐진치가 모여 벌어진 일이니까요.
업력으로 주고 받는 것이기에 연기론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착하게 인욕과 보시를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온갖 나쁜 일 저지르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두루 행하라.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그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는 일곱 부처님의 공통적인 계율,
즉 칠불통계(七佛通戒)가 불법 수행의 요체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정화 당시 효봉스님의 사제인 향봉스님이 조계사 법당 안에서 모 스님과 서로 주지를 안 맡겠다고 싸워 재판에 회부된 적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언론에서도 청정 비구의 무소유 정신의 상징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했어요.
이것이 발단이 되어 정부쪽에서도 비구측의 손을 들어주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정화가 끝나고 40년도 안 되었는데 당시의 청정비구의 서슬퍼런 지계의지가 많이 희석되지 않았습니까.
무소유 정신도 약해지고 호사스런 생활로 불자들의 비판을 받는 스님마저 생겨나고 있습니다.
선각들의 훌륭한 전통은 잊어버리고 불교가 형식화 되어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수행의 전통을 되살려야만 우리 사회를 이끄는 정신의 고향으로 불교가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이점 명심하시고 불자들은 ‘참 자기’를 찾는 일대사에 진력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범행 스님 - 인욕과 보시의 삶은 좋은 인연 만드는 길(3)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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