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2-20 11:44
|
인욕과 보시의 삶은 좋은 인연 만드는 길(1) - 범행 스님
|
|
 조회 : 4,137
|
인욕과 보시의 삶은 좋은 인연 만드는 길(1)
범행 스님
구름은 한가로이 하늘 가득 들고나니(出入雲閑滿太虛)
원래 참된 상은 한 티끌도 없구나(元來眞相一塵無)
거듭거듭 서쪽에서 오신 뜻 물으니(重重請問西來意)
오직 마당에 있는 잣나무만 가리킬 뿐(唯指庭前一栢樹).
달마대사가 전한 법은 말과 문자가 문득 끊긴 ‘불립문자 언어도단’(不立文字 言語道斷)의 진리입니다.
본래 법이라고 이름 붙여서 설한다는 그 자체가 잘못입니다.
입을 열면 이미 잘못 된 것(開口則錯)이지요. 명(名)과 상(相)에 사로잡힌 것이지요.
그래서 누가 내게 “불교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언어도단에 심행처(心行處)가 멸(滅)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법문을 잘 하지 않아요.
하더라도 미리 준비하지 않고 그때 그때 대중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근기에 맞는 떠오르는 말을 할 뿐이지요.
법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인데 새삼스레 말씀드릴 게 뭐가 있느냐 이 말이죠.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것이 법문 아닌 것이 없어요.
온 세상과 우주에 법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무슨 신통한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49년간 설법후 열반하시면서 “나는 아무것도 설한 것이 없다”고 하신 말씀의 뜻이 여기 있습니다.
성철스님 역시 열반송에서 “평생 많은 사람들을 속였다”고 한 것이 이 뜻입니다.
“원래 얻을 것이 없으며, 줄 것도 알 것도 깨칠 것도 없는데 무엇을 설할까 보냐” 이런 의미지요.
법문이란 것도 그 사람의 근기에 맞아야 지혜의 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그릇에 ‘발 씻은 물’, 꿀, 밥, 오줌을 넣으면 오물통, 꿀단지, 밥통, 오줌통으로 이름이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 사람에 맞는 방편을 설할 때 ‘참 법문’이 되는 겁니다.
한 생을 버려서라도 안되면 누생을 버려서라도 반드시 도를 깨닫고 말겠다는 굳은 서원을 지니고 수행할 때 비로소 깨달음이 다가옵니다.
그때는 조금만 일러 주어도 ‘법의 문(法門)‘이 열리고, 심지어는 돌부리에 채여도 깨닫는 것입니다.
결국 법이란 자기가 노력해서 스스로 얻는 것이지, 남이 떠다 먹이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수행 체험담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도 같습니다.
[출처] 범행 스님 - 인욕과 보시의 삶은 좋은 인연 만드는 길(1)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작성자 성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