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9-12-2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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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청상과부(2)
범철 스님
“박보살님은 휼륭한 불도인이지요.”
“어떻게 사셨는데요?”
“그 이야기는 또 해야겠구먼. 나도 박보살한테 들었지요. 내가 죽고나면 누가 그 이야기를 할꼬?”
“이야기를 들어보고 제가 세상에 알려드리지요.”
“법철스님이 그런 능력이 있오? 응?”
일제 말기 무렵, 전남 해남군의 어느 마을에 가난한 집에 박금숙이라는 아릿따운 15세의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그 시절의 관례대로 어린 나이에 부모 슬하를 떠나 보따리 하나 달랑 들고 얼굴도 본적이 없는 어느 마을의 외아들이라는 12살 되는 신랑을 맞아 시집을 갔다.
워낙 가난한 집안이었기에 혼수감이 있을 턱이 없었다.
금숙은 이별의 설움으로 몸부림치며 시집을 가지 않겠다며 울었다.
아버지는 속으로 울면서 싸립문 밖에서 돌아섰지만, 어머니는 어린 동생과 함께 거의 익은 보리밭 둑에 까지 나와서 울며 떠나가는 딸을 전송했다.
어머니는 울고 떠나가는 딸에게 이렇게 사죄했다.
“금숙아, 못난 부모를 용서해다오. 군입 하나 덜겠다고 너를 저자거리에 버리듯 아무렇게나 떠나보내는구나.”
금숙은 보따리를 한손에 들고 다른 한손으로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면서 엉엉 울면서 소리쳤다.
“어머니, 나 시집가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살래. 어머니 나 보내지 말아 주어…”
바람에 너울거리는 보리밭 둑에서 어린 딸을 내쫓듯 손으로 밀면서 어머니는 울면서 딸에게 소리쳤다.
“아가, 행복하게 잘살아라 잉”
이 소리는 메아리쳐 딸의 가슴으로 돌아와 딸을 더욱 울렸다.
지금의 지엔피 1만불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부모자식간의 어처구니 없는 이별이었다.
가난한 민초들은 오직 ‘군입’하나 줄인다는 심정으로 어린 딸들을 강제로 시집을 보낸 일이 수다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전생에 무슨 정업(定業)의 장난이라는 말인가.
금숙은 결혼한지 3개월도 채 안되어 그 해 여름날, 12살 짜리 신랑이 동네 앞 개울가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개울에서 익사(溺死)하고 말았다.
신랑은 12세의 외아들이었다.
허약하고 왜소했고, 철이 없어서인지 결혼하고서도 단 한번도 부부합궁을 하지 않았다.
오직 친구들과 놀이에만 집중하고, 밤이면 어머니 품으로 기어드는 것이 다반사였다.
사나운 시어머니는 금숙에게 다가와 험악한 인상을 쓰며 이렇게 호통을 쳤다.
“너, 네 신랑을 받아주지 않고 밤이면 내쫓는 것이지?”
금숙은 두손을 부비면서 애소하듯 말했다.
“어머님, 저는 절대 신랑을 내쫓지 않았어요. 믿어주세요. 신랑에게 물어 보세요.”
“닥쳐라, 이년! 네 신랑에게 물었더니 네가 싫다는 게야! 네년이 평소 잘대해 주었으면 너를 싫어 하겠느냐?!”
“어머님, 제가 더욱 잘 할께요. 용서해 주세요.” “잘들어, 네년이 이집에 시집온 것은 밥만 쳐먹으로 온 것이 아니야! 부부금슬이 좋아서 후손을 보아야 할께 아니냐!”
“예, 알겠어요, 어머님.”
“네 신랑을 하늘처럼 모셔야 해. 복쪼가리 없이 굴면 당장 내쫓아 버릴거야. 알겠냐?!”
[출처] 범철 스님 - 15세 청상과부(2)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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