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말씀

작성일 : 22-09-29 20:03
日常禮經(일상예경)과 持誦發願(지송발원)(3) - 종범 스님
 글쓴이 : 도심혜천
조회 : 3,354  
日常禮經(일상예경)과 持誦發願(지송발원)(3)

​

​종범 스님

​

​그러면 어떡하면 되냐.

어떡하면 이 난 것이 없는 걸 깨닫느냐.그게 깨닫는 방법이 이제 법문을 배우는 건데, 그‘법문을 배운다’라는 것은 다른 거 아무 것도 없고, 그 혹업, 난 것이 없는 나에게 났다, 나다, 내가 태어났다, 나다, 이렇게 생각하고 얽매이는 것을 닦아내는 거예요.

그 혹업을.

그게 법문을 배우는 거지요.

그다음에 불도를 이룬다는 것은 이 몸은 난 것이 아니다,

이 몸은 죽는 것이 아니다.

나고 죽음이 없는 적멸 세계가 있다.

이걸 깨닫는 게 이제 불도를 이루는 건데, 이걸 어떻게,

불도를 이루면 어떻게 되냐.

무생구족 ,생멸은 없는데 모든 게 다 구족해요.

갖출 구자, 넉넉할 족자.

없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걸 열반이라고 해요.

무생구족.

그래서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구족한 세계에 들어가는 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그걸 성불이라고 하고.

그러면 이 무생구족을 초기불교에서는 별로 설명을 안 하는데, 이제 대승불교에서는 이 무생을 성(性)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성품이라는 성자.

그런데 중생들은 상을 보는데 성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늘 가르치는 걸 성을 가르쳐요.

상이라고 하는 것은 구름도 상이요, 이슬도 상이요, 바다도 상이요, 안개도 상이요, 상인데, 성이라고 하는 거는 그 축축한 습기, 습성 ,그게 성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구름 모양이나, 안개 모양이나, 흐르는 물 모양이나, 얼음 모양이나, 이건 전부 모양에 불과하고 내용은 바로 그 축축한 습기 그것이다.

그것이 여러 가지 나고 죽는 속에,나고 죽음이 없는 성이다. 그래서 상에서 성으로 돌아가면 거기는 구족하다.

다 갖춰져 있다 이거죠.상성.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항상 온갖 천지 만법에 본성이 있다.

그래가지고 그걸 만법 본성이라고 그래서 법성이라고 하거든요.




법성, 턱 보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일체제불에게 본성이 있다.

그걸 불성이라 그래요.

또 이 허망하고 무상하게 헛되고 거짓된 속에 헛되지도 않고 거짓되지도 않은 참성이 있다.

이래서 이걸 진성이라 그래요.

다 헛된 건데 거기에 아주 참 본성이 있다해가지고 진성이다 그러거든요.

나는 이게 몸인데 내 몸, 내 얼굴, 이렇게 내 몸을 말하는데, 이 내 몸에 나의 본성이 있다.

이걸 자성이라고 그런단 말이에요.

자성.

이렇게 법성, 불성, 진성, 자성, 이걸 딱 보는 걸 견성(見性)이라고 그러고.

성을 본다.

이걸 믿는 거를 신성이라고 그러는데, 믿을 신자.

가르침에 의해서 쭉 따라가는 게 이제 신성인데, 자기가 눈앞에서 봐요.

이걸 견성이라 그래요.

현견불성, 눈앞에서 불성을 본다.

현견자성, 바로 눈앞에서 자성을 본다.

그러면 이걸(물컵)떡 이렇게 보이면, 여기서 이 모양을 보는 게 아니라 법성을 보는 거예요.

그래서 내 몸에서 태어난 몸을 보는 게 아니라 나의 자성을 봐요.

그러면 거기에는 무생구족이라, 생멸이 없고 다 갖추어져서 무생구족.

그냥 놀면 돼요.

할 일은 없어.

인간이 바쁘고 할 일이 많고 힘들고 어려운 건 전부 번뇌망상으로 시작된 거예요.

할 일 없어요.

할 일 많은 사람들은 너무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해서 뭐 할 건데.

다 쓰잘데기 없어요.

전부 그것은 상 놀음이다.

상 보이는 모습이다.

그 성 놀음이 아니에요.

그걸 현상, 진성 이렇게 설명해요.

전부 현상 놀음입니다.

나타난 모양, 나타난 모양에 얽매여서 하니까 바쁜 거예요.

참된 본성에 들어가면 없어.

그냥 무생구족이에요.

생멸 없는 구족한 것이다 이거죠.

그게 불도예요.

[출처] 종범 스님 - 日常禮經(일상예경)과 持誦發願(지송발원)(3)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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