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9-2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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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禮經(일상예경)과 持誦發願(지송발원)(2) - 종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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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禮經(일상예경)과 持誦發願(지송발원)(2)
종범 스님
그런데 이 중생이라는 건 뭐냐.
중생이라는 것은 고통이 없으면 중생이라고 안 해요.
중생에게는 고통이 있고, 고통과 근심, 걱정을 합해서 부르는 이름이 고뇌라 그러는데 고뇌.
그러면 이 고통이 뭐냐.
죽고 살고, 되고 안 되고.
보통 고통을 얘기할 때 생로병사를 얘기하고, 애별리고(愛別離苦)를 얘기해요.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거.
또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거.
원증회고(怨憎會苦), 만나기 싫은 사람하고 만나는 거.
오온성고(五蘊盛苦), 몸과 생각이 너무 왕성해서 스스로 괴로움을 만드는 거.
이런 걸 이제 고통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이 생로병사라든지 이런 고통이 어디서 왔느냐.
이걸 설명하는 게 집(集)인데 고집, 이 집이라는 거는 여러 가지가 모여서 왔다.
여러 가지 모인 게 뭐냐.
거기에는 딱 한 가지예요.
이 몸을 나라고 생각하는 거.
생로병사도 내가 태어나서 늙어 죽는다는 거거든요.
거기에 주체가 나요.
그 다음에 뭐 되고 안 되고 하는 것도 나고.
나, 이게 이제 번뇌인데, 나라고 하는 것은 불교 용어로는 혹업(惑業)이라고 그래요.
미혹할 혹자,움직일 업자, 직업이라는 업자, 혹업.
혹업은 행위인데, 미혹한 행위이다.
미혹에서 온다.
뭐가 미혹이냐.
이 몸이 난 게 아닌데 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몸이 난 것이 없다>라는 걸 아는 거예요.
이거 참, 이거 보통 일이 아니에요.
이 몸이 난 것이 없다.
난 것이 없다는 것을 없을 무자, 날 생자, 무생(無生)이라고. 그러고 또 죽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적멸(寂滅)이라고 그래요. 고요할 적자, 없어질 멸자, 적멸.
그걸 열반이라고 그래요.
무생, 적멸, 열반, 그걸 깨닫는 거예요.
이 몸은 난 것이 없다.
무생.
이 몸은 죽는 것이 없다.
적멸.
이 몸은 죽고 사는 게 없다.
열반.
그런데 그걸 모르고 이 몸이 났다.
난 건 누구냐.
나다.
이 생멸과 아상에 매여서 살아요.나고 죽는다,나라는 생각에 매여서 사는데 그걸 혹업이라 그래요.
그런 혹업에 의해서 온갖 고통이 나온다.
그래서 번뇌라는 것은 난 것이 없는 데서 났다라고 잘못 생각해서, 나를 위해서 온갖 행위를 해서,그 행위에 의해서 나타나는 결과가 괴로움이다 이렇게 가르치는 거예요.
이게 고집이란 말이에요.
[출처] 종범 스님 - 日常禮經(일상예경)과 持誦發願(지송발원)(2)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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