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2-2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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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든 수행하든 될 때까지 해야(3) - 영진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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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든 수행하든 될 때까지 해야(3)
영진 스님
육조 스님은 어떻게 스승을 찾아갔습니까?
그 분은 원래 땔나무꾼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육조 스님이 식당에서 나오는데 가슴에 와 닿는 글귀를 누가 독경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선비에게 “그런 말씀 들으려면 어디가야 들을 수 있습니까?”했더니 “저 황매산에 가면 오조 홍인 선사가 계시니 그 곳에 가면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나무를 열심히 해서 돈을 모아 어머니에게 드리고 출가를 합니다.
그러나 광동성에서부터 황매산까지는 엄청난 거리에요.
우리나라 남북 가로지르는 것보다 더 멀어요.
무슨 교통이 있습니까.
휴대폰이 있습니까.
또 그 스님이 계신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 출발하는 그 마음이 어디 적당한 신심 갖고 되겠습니까?
정말 그 스님한테 가면 이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간절한 믿음을 갖고 그 험한 길을 가는 겁니다.
한걸음도 신심이요, 두 걸음도 신심이었습니다.
그 신심으로 가서 눈물 나게 몇 달을 걸어갔는데 마침 오조 홍인 스님이 계신 겁니다.
그 간절한 마음으로 넓은 땅을 걸어 와서 기쁜 마음으로 “스님 출가하러 왔습니다.” 했습니다.
홍인 스님이 그의 그릇을 알아보아야 하겠기에 묻습니다.
“너는 어디 사는 누구냐.”
“네 저는 영남 사는 무지렁이 백성입니다.”
“남방 무지렁이가 어찌 수승한 법을 배운다 하느냐.”
“사람에게는 남과 북이 있을지언정, 어찌 진리에 남과 북이 있겠습니까?”
그러자 오조 스님이 ‘큰 그릇’임을 알아차립니다.
혹여나 다른 700여 대중으로부터 질투에 의해 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저놈이 입은 살아 있구나. 너는 가서 방아나 찧어라.”
홍인 스님은 혜능 스님의 출가를 허락하면서도 스스로 자만하지 않게, 해를 입지 않게 방아를 찧게 한 것입니다.
혜능 스님이 방아를 여덟 동안 찧는데 그냥 방아만 찧는 것은 아니라 찧으면서 수행을 합니다.
그 뒤 여덟 달 만에 대 사건이 벌어집니다.
오조 홍인 스님이 법을 전해줄 제자를 찾으려고 “누가 나에게 와서 한번 일러 받쳐봐라”합니다.
그 밑에 신수 스님이라는 분은 오조 홍인 스님의 수제자로 700명의 교수사였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수 스님이 오조 스님의 법을 받으면 ‘이분에게서 법을 배우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아요.
그러니 신수 스님에게 이것이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내 공부를 바치면 혹시 내 스승께서 육조에 대한 욕심 때문에 그런 거 아닌가 할 수도 있고, 하지만 바치지 않으면 내 공부가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니 어쩐다?’
고민에 휩싸인 끝에 신수 스님은 아무도 보지 않는 때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의 바탕이요, 시시때때로 먼지를 털고 닦아서 때가 끼지 않게 하라’라는 글을 벽에다 씁니다.
그러니까 홍인 스님이 이걸 보고 신수 스님을 불러 묻습니다.
“네가 썼느냐?”
“네. 제가 썼습니다. 저에게 조그만 견처라도 있습니까?”
“너의 이 게송은 문 밖에 까지는 도달했으나 문 안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3일을 줄 테니 다시 해 와라.”
[출처] 영진 스님 - 기도하든 수행하든 될 때까지 해야(3)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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