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2-3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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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과 성불(11)
종범 스님
첫째는 왜 도를 닦는가!
무상을 느끼고 도를 닦아야 됩니다.
무상을 못 느끼고 도 닦는다는 건 거짓말이예요.
내 생각을 철석같이 가지고 주장을 하고, 이 몸이 영원히 살거라고 믿고 사는데 뭐가 더 필요해요.
아무것도 필요없는 거예요.
생각도 허망하고 육신도 믿을게 못 되고 이게 도대체 뭔가, 진실한게 뭐가 없겠냐 이렇게 해서 도인이 되는 거지 그렇지 않고는 도인이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참 마음, 참 정신을 찿았거든요.
일체 근심 걱정이 다 없어져요.
그 다음에 할 일이 자비로 밖에 갈 데가 없어요.
중생제도 하는 것 밖에는 더 이상 갈데가 없는 거예요.
이게 자빈데 자비는 지혜에서 나온 거거든요.
그걸 설명한 걸 화엄경식으로 하면 보현 행원입니다.
보현 행원이라는 게 한 마디로 원행이거든요.
(행원)같은 말인데 원력을 세워서 자비행을 닦는다.
그리고 법화경에서도 관세음 보살 보문품이예요.
관세음 보살 보문품에 보면 관세음보살의 자비행 아닙니까.
부처님 되시고 나서 보현 보살과 같이 자비행을 닦고, 법화경에서 관세음보살과 같이 자비행을 닦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어요.
이것이 부처님의 가풍이고 역사입니다.
이게 성불이에요.
그래서 불교의 가는 길이 있는데 초기 불교에서는 윤회에서부터 해탈하는 것이 초기 불교이고, 대승불교에 와서는 무상을 느끼고 무상으로부터 반야를 체험을 하고 반야에서부터 자비행을 닦는 것이 대승불교 예요.
그러면 초기 불교에서는 좋은 일을 하는 게 구복행(복을 구하는행위)이예요.
지금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에 가기 위해서 좋은 일 하는 거잖아요.
그게 구복이라고,,,
수행자들은 집착을 안하는 게 그게 수행이죠.
그럼 해탈되는거죠.
대승불교에서는 첫째 무상을 알고 하니까 반야를 찿고 자비가 나오니까 다 이렇게 하는냐 그게 아니고 그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도 우리도 부처님 같이 자비행 공덕행을 닦으면 구경 성불하는 거예요.
구경원성 살바야, 이렇게 축원 하잖아요.
축원문안에 대승불교 조직 구조가 다 들어 있어요.
마침내 성불한다.
성불에는 찰나성불이 있고 구경성불이 있는데요.
찰나성불, 지금 이 순간에 성불하는 게 찰나 성불이예요.
석가모니 부처님도 찰나성불 하셨고 도인들도 찰나 성불 하셨는데 그런데 우리도 부처님같이 자꾸 공덕행을 닦으면 구경에 성불해요.
필경에 성불한다고 마침내 성불해요.
[출처] 종범 스님 - 해탈과 성불(11)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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