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말씀

작성일 : 21-12-25 22:18
해탈과 성불(8) - 종범 스님
 글쓴이 : 기획원장
조회 : 3,559  
해탈과 성불(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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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범 스님

​

​반야의 세계를 누가 설명을 하겠는가?

옛날에 선지식이 그런 말을 했어요.

"어마 어마하게 넓은 태허공으로 입을 만들어서 인간의 입이 아무리 커도 얼마 크지 않잖아요.

초목화석으로 전부 다 조명을 비춰가지고 미래의 세월이 다 하도록 밤낮없이 설법을 해도 그 반야의 세계는 알려 줄 수가 없다."이게 반야의 세계예요.

그게 무념의 세계고, 깨달음의 세계고, 그게 성불이고, 그게 견성이예요.

그래서 견성은 무아로부터 오는 거예요.

내가 없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없지요.

망념도 내가 아니고, 이 몸뚱이도 내가 아닌데 거기서 부터 반야를 개발하면 이건 그야말로 무진 억만겁이 가도 달라지는 것이 없고, 이건 뭐 이 세상 어디에도 비유할게 없다.

그래서 이 기쁨을 어디다 비교할 것이며 그 광명을 어디다 비유 하겠는가.

그 분이 바로 석가모니이고 그 분이 바로 아미타불 아닌가.

이 반야는 깨닫는 순간에 무진 억만겁서부터 하나도 변함없는 천진불이 그대로 눈 뜨고 있다.

그 깨침에 대한 노래를 많은 분들이 했는데 경허스님 참선곡에도 있고 많은 도인 스님들이 깨치고 나서 반야를 읊은 노래가 굉장히 많아요.

그것은 바로 이 무상에서부터 허망한 몸뚱이에서부터 얻는데 이런 거를 임제선사같은 분은 무위진인 이라고 했어요.

무위진인은 지위가 없는 참사람이다.

우리는 다 지위가 있어요.

누구의 아들, 누구의 형, 누구의 아우, 누구의 선생, 누구의 제자......

또 몇 살이다.

어디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 반야는 지위가 없어요.

개념이 없다는 얘기예요.

이 깨달음을 개념으로 접근하면 무진 억만겁을 닦아도 안 되는거예요.

개념을 무너뜨리는게 깨달음이예요.

그래서 선이라고 주장하면 벌써 선이 아니구요.

이렇다 주장하면 벌써 이런 게 아니고 저렇다 주장하면 저런 게 아니에요.

일체 개념으로 부터 벗어나는 게 깨달음입니다.

그런데 그 무위진인을 못 깨닫고 아집에 사로잡혀서 이 몸뚱이를 자기자신으로 보는 수준이 있는데 그걸 임제록에서는 재미있게 표현 했어요.

[출처] 종범 스님 - 해탈과 성불(8)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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