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2-2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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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과 성불(7)
종범 스님
이런 겁니다.
깨달음에서 볼 때는 무슨 소리를 해도 개념인데 개념은 조작된 거다.
개념이 오늘 또 모자라 내일 또 조작하죠.
그래서 신용어들이 계속 나오는 거에요.
그것 역시 변한다 이거에요.
그래서 학설치고 안 변하는 게 없거든요.
본래 관념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이 반야는 모든 관념에서 해방된 것이 반야에요,
관념의 초월, 그걸 무념(無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육조단경에 보면 무념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거에요.
이 육조단경이 어디서 나왔냐 하면 금강경에서 나왔거든요.
반야 바라밀을 보고 깨닫고 설법한 게 육조단경이거든요.
그래서 육조단경의 소이경전이 금강경입니다.
그러니까 무념이라고 딱 한거다.
그리고 모든 형상을 관찰하는 것은 자기 생각으로 보이는 건데 자기 생각에서 형상이 관찰되어진 걸 전혀 모르고 완전히 자기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줄로 알고 집착을 하는 게 중생이거든요.
그래서 금강경에서 무념이라는 말은 없는데 ‘이 일체상 즉명제불’라 일체상을 떠날때 부처다 라고 설명을 한거고, ‘제상이 비상이면 즉견여래’라 모든 형상이 상이 아닌 것을 본다면 바로 여래를 보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상은 개념에서 나오는 거예요.
망념에서.
그런데 상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자기 허망한 생각으로 부터 해방된다는 거예요.
그게 무념이고, 그게 반야입니다.
이게 참 문제예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개념으로 받아들이니까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무념이 망념을 뚷고 들어갈 수가 없어요.
한 쪽에는 무념이고 한쪽에는 망념이란 말이에요.
허망한 생각은 폭탄을 터트려도 안 없어지구요.
별별 마취를 다 받아도 망념은 안 없어져요.
스스로 망념을 깨야 되요.
[출처] 종범 스님 - 해탈과 성불(7)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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