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2-2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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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과 성불(4)
종범 스님
법행이립 - 공덕행인데 좋은 일 하는건데 수행을 말하는건데 수행은 이미 성립이 됐다.
좋은 것에도 너무 집착하면 묶이는 거고 좋다고 너무 탐하지 말아야 돼요.
불수휴휴 - 다음 생은 안 받는다.
그게 해탈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되는 이유가 어디서 어떤 관찰에서부터 시작되느냐 무아이거든요.
무아(無我) -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구했는가?
뭘 위해서 구했는지 아세요?
영화를 구하고,성공을 구하고, 열심히 찿아 헤맸을까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게 망상이거든요.
지금까지 나라는 허상에 매여서 이렇게 구하고 또 구해서 끊임없이 고통을 반복한 거거든요.
이걸 보기 시작 한거예요.
그런데 부처님이 보니까 나라는 것이 없더라는 거예요.
이게 무아(無我)고 무상(無相)이예요.
무상(無相) - 아무리 구해도 없어진다.
이게 무상아닙니까.
나를 위해서 구했는데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나라는 게 있을려면 내 맘대로 되는 게 있어야 되는데 나라는 게 없구요.
변하지 않는 게 있어야 되는데 변하지 않는 게 하나도 없어요.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일생을 살아가는데 내 모습이 천만억개도 더 되는 거죠.
어릴 때의 내 모습, 중간 때의 내 모습, 늙었을 때의 내 모습, 죽어갈 때의 내 모습.
도대체 무엇을 나라고 할 수가 없다.
지금의 내 모습도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것이고, 이게 며칠 못 간다는 거예요.
지난 달에 왔을때 내 모습하고 지금 모습하고 달라졌을 거거든요.
그럼 지난날의 내 모습이 나인가,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인가?
어떤게 나겠어요.
한 5년전에 여기왔는데 5년전의 모습이 나인가....
나라는 것을 관찰해보면 나라는 것이 없는데 생각으로 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걸 아상(我相)이라고 하고, 아집(我執)이라고 합니다.
나에 대한 집착, 나에 대한 생각이라고 ‘무아를 철저히 보니까’ 더 이상 구할 게 없는 거예요.
이게 해탈이예요.
뭐든지 구하면 묶이는 거예요.
무아를 보지 못하니까 끊임없이 구해서 돌고 돌고,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저 집에서 이 집으로 돌고 돌고 반복하거든요.
이것이 바로 무상과 해탈, 윤회와 해탈이죠.
해탈 – 구하지 않는 게 해탈이지 뭐 다른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다른 게 따로 있다면 역시 거기에 묶이는 거예요.
뭐든지 구하면 묶이는 거예요.
일체 구함이 없는 무구(無求) - 구함이 없는 세계, 그게 해탈이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구함이 없는 걸 구하면 그것도 속박이예요.
보이는 걸 구하든지 보이지 않는 걸 구하든지 구하는 건 다 얽히는 거든요.
마찬가지예요.
여기까지가 ‘소승불교’입니다.
멋있는 거예요.
[출처] 종범 스님 - 해탈과 성불(4)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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