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10-22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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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떠난 숲은 적막하다(1) - 법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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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떠난 숲은 적막하다(1)
법정 스님
달력 위의 3월은 산동백이 꽃을 피우고 있지만 내 둘레는 아직 눈 속에 묻혀있다.
그래도 개울가에 나가보면 얼어붙은 그 얼음장 속에서 버들강아지가 보송보송한 옷을 꺼내 입고 있다.
겨울산이 적막한 것은 추위 때문이 아니라 거기 새소리가 없어서일 것이다.
새소리는 생공하는 자연의 소리일 뿐 아니라 생명의 흐름이며 조화요 그 화음이다.
나는 오늘 아침, 겨울산의 적막 속에서 때 아닌 새소리를 듣는다.
휘파람새와 뻐꾸기와 박새, 동고비, 할미새와 꾀꼬리, 밀화부리, 산비둘기, 그리고 소쩍새와 머슴새와 호반새 소리에 눈감고 숨죽이고 귀만 열어놓았었다.
어제 시내를 다녀오는 길에 한 노보살스님한테서 받은 선물을 오늘 아침에 풀어보니 어떤 조류학자가 숲과 들녘과 섬을 다니면서 채록한 ‘한국의 새’ 소리들을 출판사에서 펴낸 녹음 테이프였다.
눈 속의 오두막에서 녹음으로 된 새소리를 듣고 있으니 식간과 공간을 초월한 별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감흥이 일었다.
맑게 흐르는 시냇물소리, 거기에 곁들인 아름다운 새소리에 귀기울이고 있으면 문득 초록이 우거진 숲에서 풋풋한 숲 향기가 풍겨오는 것 같다.
그리고 맑은 햇살이 비낀 숲속의 오솔길에 청초한 풀꽃과 푸른 이끼가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상상력이란 일찍이 자신이 겪은 기억의 그림자일 것이며, 아직 실현되지 않은 희망사항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좋은 상상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살아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어둡고 불쾌한 상상력은 우리들을 음울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생각이나 상상력도 하나의 업(業)을 이루기 때문이다.
몇해 전 이른 봄에 여수에서 배를 타고 남해의 외딴 섬 백도(白島)를 다녀온 일이 있다.
백도는 지저분한 사람들에 의해 아직은 더렵혀지지 않은 천연의 아름다운 무인 고도다.
이 백도를 다녀오는 길에 시간이 있어, 거문도의 등대와 그곳으로 가는 길목의 동백꽃을 보기 위해 등성이 길을 올랐었다.
그때 문득 밀화부리소리가 들려 귀가 번쩍 띄었다.
동백꽃 아래서 뜻 아닌 밀화부리소리를 들었을 때 어찌나 반가웠는지 마냥 가슴이 설레었다.
육지의 산에서는 오뉴월이 되어야 들리는 새소리다.
그때 그곳에서 나는 그날 하루의 삶에 그지없이 고마워했다.
오늘 아침 이 새들의 목청을 녹음으로 들으면서 한가지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밀화부리와 휘파람새소리는 얼핏 들으면 비슷한 데가 있지만, 자세히 귀기울여보면 휘파람새는 밀화부리에 비해 성량이 빈약한 데다 조금은 딱딱하고 그 울림의 끝이 약하다.
밀화부리는 그 목청에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것 같은 아주 음률적인 소리를 띠고 있다.
또 한가지 배운 것은 숲에 신록이 번질 무렵 그 새소리는 가까이서 늘 들으면서도 이름은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그 새가 하는 ‘검은등뻐구기’이고 다른 하나는 ‘벙어리뻐꾸기’라는 걸 알고 반가웠다.
영롱한 구슬이 도르르 구르는 것 같은 호반새소리를 듣고 있으니, 불일암의 오동나무가 떠오른다.
호반새는 부리의 발과 깃털 할 것 없이 몸 전체가 붉은 색을 띤 여름 철새다.
초입의 그 오동나무에는 새집이 네 개나 아래서 위로 줄줄이 뚫려 있는데, 초여름이 되면 딱따구리가 새끼를 치기 위해 부리로 쪼아 뚫어 놓은 구멍이다.
그런데 번번이 이 호반새가 와서 남이 애써 파놓은 집을 염치없이 차지하고 집주인 행세를 한다.
사람으로 치면 뻔뻔스런 집도둑인 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목청만은 들을 만하다.
[출처] 법정 스님 - 새들이 떠난 숲은 적막하다(1)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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