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말씀

작성일 : 21-03-19 08:47
지혜롭게 참구하라(6) - 무여 스님
 글쓴이 : 기획원장
조회 : 4,069  
지혜롭게 참구하라(6)

​

​무여 스님

​

​그 마조도일선사도요 전법원(傳法院)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입니다.

스승인 남악 회양(南嶽 懷讓, 677-744)선사가 보니 늘 공부하는 모습이 장차 큰 도를 이룰 그릇이나 공부하는 모습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어요.

하루는 마조에게 묻습니다.

“그대는 참선을 해서 무얼 하고자 하느냐?”

“장차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다음날 회양선사는 벽돌을 한 개 가져와서 마조 앞에서 덜덜 갈아댔습니다.

“무엇을 하려고 벽돌을 갑니까?” “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벽돌로 어떻게 거울을 만듭니까?”

“좌선만 해서 부처가 된다는 사람도 있는데 어찌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못 만들겠는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사람이 수레에 짐을 싣고 가는데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수레를 때리는 것이 옳으냐?

소를 때리는 것이 옳으냐?

그대는 좌선수행을 하는가, 좌불을 배우는가?

만약 좌선수행을 한다면 선은 좌와(坐臥)에 있지 않은 것이고, 만약 좌불을 배운다면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없네.

무주법(無住法)에서 주(住)하는 법이 없는 법에서 취하고 버리되 차별심을 일으키지 말라.

그대가 만약 좌불을 배운다면 그것은 부처를 죽이는 일이오, 만약 좌선하는 모양에 집착한다면 불법의 참된 이치를 깨닫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선사께서 그 말을 듣자마자 “제호(마치 우유를 정제해서 만든)를 마시는 것과 같았다.”

즉 깨쳤다는 거래요.

이 공부는 소를 때리는 아주 지혜로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선은 선사의 말씀처럼 좌와에 있지 않고, 앉고 눕는 데도 있지 않고, 부처는 정해진 모습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만약 좌불을 배운다면 부처를 죽이는 일이요, 모양에 집착하면 불법의 참된 이치를 꿈에도 볼 수 없습니다.

손자병법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한다.’

백번 싸워서 백번 다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아는 것은 전술의 기본 전략입니다.

참선자가 역시 자기를 알고 화두를 이해해야 간절한 정진을 할 수가 있고, 그래야 진의가 돈발해서 선정에 들기 쉽습니다.

자기는 자신을 잘 알 것 같지만 참선하는 사람까지도, 즉 마음공부하는 사람까지도 의외로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참선자로서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자기의 근기와 참구자로서의 자질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알고 적당하게 참구해서 최상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화두는 지혜롭게, 아주 묘하게 참구해야 합니다.

화두에 의정을 일으키되 강하게도 말며, 약하지도 않으며, 급히 들어서도 안 되고, 느리게 해서도 안 됩니다.

의정은 적당하고 알맞게 일으키되 분명하게 일으켜야 합니다.

화두를 급히 강하게 들고 의정을 거칠게 일으키면 마음이 불안하고 들뜨며 동요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그러면 정신집중도 안 되고 진실한 의정을 일으키기가 어렵고요, 그런 사람은 육단심이 동해서 혈기가 고르지 못하고요, 갖가지 병을 유발시키기 쉽습니다.

그러나 화두를 약하게 들고 느리게 의정을 일으키면 정신이 해이하고 망상이 들어오고 산만하기 쉽고 혼침(졸음)에 빠지기 쉬우며 분명하게 들기가 어렵습니다.

화두는 적당하게 알맞게 들어야 합니다.

화두참구는 ‘적당하게, 알맞게’ 라는 말이 아주 긴요합니다.

‘적당하게 알맞게’ 라는 말에 온갖 지혜가 함축돼 있습니다.

[출처] 무여 스님 - 지혜롭게 참구하라(6)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 교구사찰소식
  • 불교용어사전
  • 종무자료실
  • 사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