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4-05-0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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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숙면일여(熟眠一如)
성철 스님
수행자가 수행방편을 망각하지 않고 계속 일으킴이 "행주좌와일여"(行住坐臥一如)하고, "어묵동정일여"(語默動靜一如)하고, "몽중일여"(夢中一如) 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깊은 잠 속에까지 한결같게 이어지게 되는데, 이것을 공부의 "숙면일여"(熟眠一如)라고 한다.
이와 같이 깨어있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의 전(全)영역을 공부로써 채워 버리게 되면 수행자의 공부는 "오매일여"(寤寐一如)하다고 한다.
중생의 일과(日課)는 "무기(無記)에 빠짐"과 "번뇌(煩惱)가 일어남"의 반복이다.
그러한 가운데 "오시"(寤時)에는 무기(無記)보다는 번뇌(煩惱)가 많고, "매시"(寐時)에는 번뇌(煩惱)보다는 무기(無記)가 많다.
"매시"(寐時)에도 얕은 잠에서는 번뇌가 일어나고 즉, 꿈을 꾸게 되고, 깊은 잠에서는 무기(無記)에 빠지게 된다.
수행자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수행방편(修行方便)을 "의식"(意識)으로 굴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깊은 잠에 빠지게 되면 기절(氣絶)했을 때와 꼭 같이 의식(意識)의 작용이 멈추어 꿈도 없고, 생각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깊은 무기(無記) 속에 있을 때 인데 이 때에는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할 것인가?
수행자의 공부가 행주좌와시(行住坐臥時)에서 어묵동정시(語默動靜時) 몽시(夢時) 까지는 거의 의식(意識)으로 공부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숙면시"(熟眠時)에는 무기관성(無記慣性)만 미치는 영역이어서 의식(意識)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때에는 수행자의 공부가 행주좌와일여하고, 어묵동정일여하고, 몽중일여함에 이르기까지 수행의 힘으로 생기게 된 "삼매관성"(三昧慣性)을 무기관성만이 미치는 영역 속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자가 "숙면시"(熟眠時)를 "삼매관성"(三昧慣性)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공부의 "숙면일여"(熟眠一如)이다.
수행자가 무기관성(無記慣性)만이 미치는 시간까지 "삼매관성"(三昧慣性)이 이어지게 하려면 "추번뇌"(麤煩惱) 를 모두 평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공부가 "숙면일여"(熟眠一如)에 이르려면 추번뇌(麤煩惱)를 모두 평정해야만 가능하다.
추번뇌(麤煩惱)를 모두 평정한 수행자라면 중생(衆生)이 아닌 "성인지"(聖人地)인 "보살지"(菩薩地)이며 "불퇴전지"(不退轉地) 이므로 "분단생사"(分段生死)에서는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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