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2-2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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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되 의심하고 분심 내라(4)
영진 스님
오늘은 간화선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인도에서 발원한 부처님 가르침이 인도의 28대 조사까지 흘러옵니다.
28대 조사 달마 스님이 중국으로 건너왔습니다.
한 500년간 선이 없었습니다.
동토(東土), 즉 인도에서 본 중국이나 한국에는 그랬습니다.
동토에 선의 씨앗을 심은 스님이 달마입니다.
달마 스님은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정신을 가져왔습니다.
사람 마음의 성품을 보아 본래면목 자리를 확인한다는 겁니다.
달마 스님에서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 스님으로 면면히 이어져온 시대를 조사선 시대라고 합니다.
누가 물으면 거기에 대답을 하셨습니다.
묻는 이의 근기가 수승하면 깨우쳤습니다.
중국은 큰 대륙입니다.
지금처럼 차도 기차도 비행도 없었습니다.
스승을 만나러 산 넘고 물 건너 이역만리로 선지식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한 걸음 두 걸음이 다 수행입니다.
옛날에 노보살님들 절에 가서 가기 전날 목욕재계하고 암자에 쌀 이고지고 올라가셨습니다.
정성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너무 쉽습니다.
물론 마음의 차이겠지만 그렇습니다.
한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찾아갔습니다.
거기를 섣부른 마음으로 갈 수 없습니다.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 조주 스님이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여쭙니다.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기상천외한 말씀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부처님은 열반경에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왜 없다고 하십니까?’
모르고 묻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조주 스님은 다시 ‘성품에 업식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합니다.
‘없다’하는 순간 깨쳐야 하는데 못하니까 다시 말합니다.
‘조주 스님은 열반경도 안 봤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이역만리 찾아간 의미가 없어요.
‘나도 알고 있는데’ 이러면 의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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