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2-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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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되 의심하고 분심 내라(2)
영진 스님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수시로 바뀌는 계절.
이 아름다운 자연도 나중에는 이 녹색도 물들고 떨어집니다.
스님들은 동안거, 하안거 한 번 하면 벌써 한 해 지나갑니다.
엊그제 같은데 금방 석 달, 석 달입니다.
정말 우리는 급합니다.
급하게 느끼셔야 합니다.
무상감을 느끼면 발심이 됩니다.
발보리심의 준말입니다.
위 없는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입니다.
진발심이라고해서 최우선 순위입니다.
‘이 진리는 뭘까’ ‘어떻게 하면 나도 본래 부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을까’하고 ‘나도 깨달아 봐야겠다’라며 온 마음과 몸을 바쳐 닦겠다고 하는 게 발심입니다.
아무 목적 없이 앎도 없이 그냥 앉아서 참선만 한다고 깨칠까요.
깨쳤다고 해도 역대 제불조사와 같은가?
이건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예전에는 사이비 종교가 많았습니다.
깨달았다는 교주가 나와 혹세무민합니다.
그러나 불교적 깨침은 자기가 깨쳤다고 깨친 게 아닙니다.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역대 선지식으로부터 검증받아 인가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점검, 인가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한마디로 연기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공입니다.
다른 말로 무아, 또 다른 말로 하면 중도입니다.
연기, 무아, 공, 중도는 말만 다르지 내용은 같습니다.
모든 현상은 인연 따라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이 산천초목도 연기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공이라고 합니다.
왜?
변하기 때문입니다.
고정돼 있으면 변하지 않습니다.
이 현상은 순환하고 있습니다.
연기에 소멸되고 일어나고 머물고 소멸되고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공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비었기에 다 가능한 것입니다.
없다는 말로만 해석하면 오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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