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2-19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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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괴로움이란 없다(2)
각산 스님
알고자 하는 그 마음 = 참구입니다.
찾고자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유레카를 외치게 됩니다.
근데 모르는데 억지로 하면 사량분별이라고 합니다.
알음알이라고 합니다.
입만 부처가 됩니다.
내 삶이 바뀌어야 하지 않습니까?
내 인식에 변화가 일어나야 되잖습니까?
팔만대장경이 행동화 될 수 있도록 이심전심으로 깨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것을 머리로 풀려 하지 말고 툭툭 던지고 돌리면 어느 날 탁 열려버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만 모를 뿐이지, 몰라서 모른다가 아닙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은 그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지금 일어난 것을 되돌려 쓰는 것이 최고입니다.
사람에게는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다겁생을 살아오면서 익혔던 모든 업습(업력과 습관)들이 몸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기억) 되어 있어서 상황이 닥치면 내장된 업습들이 들어나는 것이죠.
만약 이성적 교육이 부재했을 경우 영장류 뇌의 발달이 부족하여 상황과 조건이 도래하면 파충류와 포유류처럼 금수 같은 인간이 되고 맙니다.
뇌과학에서 파충류의 뇌는 생명유지 기능을 하고, 포유류는 감정, 성욕, 잠깐 기억 기능을, 영장류는 이성적 사고 판단 기능을 한답니다.
중생의 입장에서 우리가 윤회 받아오면서 다겁생에 동물 안 된 사람이 없습니다.
과학이 말하는 것과 부처님이 말하는 것이 같죠?
내 안에 영장류가 들어있다 하는 것은 부처의 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부터 찬란히 빛났다.
다른 말로 네가 부처다!
이 말 아닙니까?
마음은 잘못한 것도 없고 찬란히 빛나는데 누가 그렇게 했느냐?
법화삼매참법에서도 부처님이 항상 옆에 계셨는데 내가 몰랐다 하는 게 그겁니다.
내가 알지 못해서 사회적 관습, 교육, 내 전생의 업이 그렇게 만들었지 원래는 찬란히 빛났고 원래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탁 되돌려 버리면 다 되는 것입니다.
믿어버리면 됩니다.
이게 참회입니다.
모든 죄는 서리와 이슬 같아서 (되돌려쓰는 반조)지혜의 빛으로 없어진다.
『앙굿따라 니까야』(AN1:5:1)
“비구들이여, 이 마음은 빛난다. [그러나] 그 마음은 객으로 온 번뇌들에 의해 오염되었다."
[AN.Ⅰ.9, “pabhassaram idaṃ bhikkhave cittaṃ tañ 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n" ti.]
객은 객진번뇌로서 사성제에서 집성제(괴로움의 원인), 내 식대로 되고자 하는 마음, 끝없이 추구하는 마음, 갈애 그것 때문에 그렇지 원래가 열반상태입니다.
"법은 있는 바도 없고 없은 바도 없고, 그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항상 나하고 같이 있는 겁니다.
법은 연기. 법은 부처와 같으니 연기를 본 자는 부처를 본 것이다. 그것만 알면 괴로움이 일어나도 내 것이 아녀요.
그냥 일어나는 것을 내 것으로 삼지 마십시오.
내 것이 아니다... 하고 돌리는게 무아관입니다.
텅비어 있고 일시적인 것을 왜 내가 애닳아 하고 괴로워 하는가?
느낌일 뿐이고 인식일 뿐입니다.
그냥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만 아시면 원하는 바가 다 성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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