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3-02-1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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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괴로움이란 없다(1)
각산 스님
불교는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모본이 되고 인류를 번영시킵니다.
중도는 강기슭의 두 물줄기와 같이 배제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통합하는 것이며 다 받아들여 상생하는 것입니다.
중간이 아니고 합당함이고 무제한의 텅빔 공입니다.
좋다 싫다를 여읜 우뻭카(upekkha, 捨, 마음이 언제나 평온하여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심)입니다.
중도는 팔정도입니다.
신심은 지혜를 바탕으로 확신이 되고, 지혜가 없는 믿음은 맹신이 됩니다.
종교 안에는 신앙이 있는데 불교도 지혜로 나아가지 못하면 신앙교가 됩니다.
플라시보 효과를 자기 스스로 극대화 하는게 신앙입니다.
신념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이 삶을 바꿉니다.
힌두이즘으로 된 법화삼매참법에는 많은 보살들이 나옵니다만 불교의 지혜로 모두 발편으로 부처님께서 화신으로 드러난 이면입니다.
삼계가 불타고 있는데 우리는 깨치기 이전에는 불난 집에서 나오질 않고 놀고 있습니다.
탐욕과 쾌락에 젖어있어서 그렇고 태어날 때부터 DNA에 세뇌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인식, 무조건 틀립니다.
인식으로 알 수 없으니 ‘오직 모를 뿐’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신념과 믿음도 나를 바꿉니다.
일어난 일을 되돌려쓰면 닦거나 안닦거나 무수이수(無修而修, 닦음없는 닦음)의 통찰이 됩니다.
곧 참회로 돌리는 것, 이것이 법화삼매참법입니다.
불타는 집 밖으로 나오게 하는 방편이 ‘참회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심어주는 게 법화삼매참법입니다.
‘오직 모를 뿐’은 부처님의 깨침의 영역은 우리 인간의 영역으로는 모르는 부분이니 모른다고 하는 뜻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데 쓰는 법을 모른다.
마음에서 다 이뤄진다.
원래 다 갖추고 있다.
모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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