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말씀

작성일 : 23-02-14 17:07
합리적인 사고는 버려라(3) - 의정 스님
 글쓴이 : 도심혜천
조회 : 3,433  
합리적인 사고는 버려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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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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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가의 제자 승찬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승찬은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승찬은 스승 혜가에게 전생의 죄가 많아 문둥병을 앓고 있다면서 죄를 소멸해 달라는 청을 합니다.

혜가도 달마처럼 답합니다.

‘너의 죄를 가져오너라. 너의 죄를 소멸해주겠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승찬도 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죄가 많으니 없느니 그런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선종은, 간화선은 일원화 사상의 끝판왕입니다.

불교는 한 마디로 계정혜(戒定慧), 삼학입니다.

남방불교에서는 계행을 철저히 지킨 그릇 위에, 선정의 물이 고여, 거기에 깨달음의 달이 뜬다고 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계정혜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육조 혜능 스님은 『육조단경』에서 계정혜가 하나라고 했습니다.

하나이면서 셋, 셋이면서 하나라는 것입니다.

셋으로 나눠 보는 것은 하근기라고 합니다.

계정혜, 삼학을 하나로 보는 게 한국불교입니다.

거기서 나온 수행법은 아주 간명합니다.

선종은 간명하고 빠른 방법으로 나아가는 길을 알려 줍니다.

누구든지 무심(無心)만 되면, 언제든지 순식간에 깨닫는다라고 합니다.

마음을 비운다[무심(無心)]라는 것은 ‘마음이 없는다’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망념이, 망상이 없는 게 무심입니다.

간화선은 무심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수행법입니다.

눈 푸른 납자가 마조 스님에게 찾아가 법을 물었습니다.

마조 스님은 주장자로 마당에 원을 하나 그렸습니다.

‘원 안으로 들어가도 때리고 안 들어가도 때린다. 일러봐라.’ 앞뒤가 꽉 막혔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긍정과 부정으로 답하는 출구를 막아버린, 앞뒤가 꽉 막힌 것입니다.

이것을 활구(活句)라고 합니다.

펄펄 살아서 뛰는 화두입니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이것일까 저것일까 답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죽은 화두입니다.

평생 깨닫지 못합니다.

일원화된 사유밖에 없습니다.

화두의 위대함이 여기 있습니다.

제가 출가한 지 50여 년입니다.

쭉 정진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합리주의적인 사고였습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크고 작고, 길고 짧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추하고 아름답고….

합리주의의 끝은 반대와 상대적인 개념으로 이뤄졌습니다.

그게 골수에 사무쳐서 여기서 벗어나서 사유할 수 없었습니다.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는 데 몇십 년 걸렸습니다.

우리는 뼛속까지 합리주의적 사고가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화두가 살아있을 수 없고 공부엔 진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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