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말씀

작성일 : 22-12-31 01:50
곧장 ‘나’로 향해라(3) - 원제 스님
 글쓴이 : 도심혜천
조회 : 3,463  
곧장 ‘나’로 향해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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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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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삶의 모습 그대로를 곧장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걸 ‘내’가 납득할 수 있게끔 분별의 ‘틀’을 만들어 받아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고정적이고 절대적인 의미로서의 세상과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평상과 현실은 내가 만들 그 틀을 통해서 새롭게 주조된 것들입니다.

그렇게 사람마다 가지는 이 이해의 ‘틀’이 다르기에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사람이나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 뭔지 아시는가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절대적인 중심과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 이 ‘나’라는 존재도 ‘틀’을 거친 하나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나’ 또한 주객이라는 분별의 틀을 거치면서 형성된 하나의 결과물이라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고정된 중심과 실체의 ‘나’로서 살아오기에 중생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 모든 납득과 이해의 중심체로 굳건해야만 하는데, 중생은 이 ‘내’가 연기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곧잘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나’조차도 이 납득과 이해의 내용물이라는 사실을 용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나’라는 존재가 중심이나 실체가 아니라, 오온, 즉 색수상행식이 집합이라고 이미 2600년전에 누누이 천명하셨습니다.

너무나도 명백하고 확고한 진리입니다.

제가 앞서 ‘나’라는 존재도 납득의 내용물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나’라는 것이 실상, 분별을 통하여 아는 인식 능력이나 관념이랄 수 있는 식(識)의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이 결과물인 내가, 이 ‘아상’으로서 실체를 가지고 세상의 중심에 서려는 것이 우리 중생이 지니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전도 몽상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는 참으로 좋고도 그럴듯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의심하셔야 합니다.

목건련을 의심하고, 목건련의 전생을 의심하고, 그 죽음이란 과보를 의심하고, 그 과보의 배경으로서의 선악도 의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심을 철저히 하다보면 그 분별심과 조작심의 근원으로서의 ‘나’를 만나게 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고봉원묘 스님이 쓰는 선요(禪要)에는 ‘한로축괴 사자교인’이라는 고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중국 전국시대 한로(韓盧)라는 명견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로가 비록 명견이라고 한들 여전히 개였기에, 사람이 흙덩이를 던지면 이를 쫓아갔습니다.

그러나 사자는 달랐습니다.

흙덩이를 쫓아가는 대신 그 흙덩이를 던진 사람을 곧장 물었습니다.

바깥으로 던져진 그 흙덩이라는 내용물이 아니라, 그 분별심과 조작심의 대상이 아니라, 그 바깥의 내용물로 시선을 팔리게 하는 ‘나’라는 근원을 곧장 잡아채 물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저 흙덩이처럼 던져진 삶의 무수한 내용물에 속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 근원에서 온갖 관심을 바깥으로 던지려 하는 ‘나’ 자신을 의심해야만 합니다.

진정한 공부는 바깥의 허다한 내용물이 아니라, 곧장 ‘나’로 향해 있어야 합니다.

[출처] 원제 스님 - 곧장 ‘나’로 향해라(3)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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