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말씀

작성일 : 22-12-11 11:28
견성, 깨달음은 가풍마다 다르다(2) - 법상 스님
 글쓴이 : 도심혜천
조회 : 3,444  
견성, 깨달음은 가풍마다 다르다(2)

​

​법상 스님

​

​왜, 그게 명(名)과 상(相)이잖아요.

명(名)과 색(色).

특정한 상황을 특정한 이름으로, 견성한 사람으로 그렇게 상으로 딱 만들어 놓은 거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돼도 이게 오염이 돼요.

오해의 소지가 있고, 그런데 제가 오랜 세월 보니까 쑥 아주 아주 막 그냥 눈앞에 확 사라지네요.

어마어마한 체험을 한 사람이든, 그냥 반풀만한 체험을 한 사람이든 그냥 아 하고 그냥 확 그냥 문득 돌이켜 확인한 사람이든 체험이 떠나가고 나면 전부 다 다시 놓쳤다 해쌓고 그게 진짜 깨달음이 맞을까 하고 왔다 갔다 하고 오랜 세월 오히려 깨닫기 전보다 더 못할 수도 있을 만한 헤매는 시간을 겪더란 말이죠.

오후(悟後) 수행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점수라고 한다.

육조스님도 사냥꾼들 속에서 한 10몇 년을 계시면서 보임을 했던 것처럼 오래오래 시간이 필요해요.

단박에 안목이 확 갖춰지지 않아요.

그래서 어느 가풍에서 하는 것들이 절대적으로 맞거나 틀리다라고 얘기할 수 없지만, 왜냐하면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

사람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기 때문에 그걸 다 맞다 틀리다라고 얘기할 수는 없으나 모르겠어요.

저희 공부처에서는 어떤 특정한 상황을 가지고 견성했느니 안 했느니 이게 견성이니 일별(一瞥)이니 해오니 증오니 이런 식의 무슨 입증을 해주거나 인가를 해주거나 이게 오히려 병이 된단 말이에요.

그거 여전히 미숙한 거야, 여전히 완전히 내가 이제 더 이상 어디에도 의지할 필요 없겠구나 스스로 자성자오하기 전까지는, 그 미진함에 그 미진함이 좋은 일이에요.

미진함에 기대여서 내가 자꾸 공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단 말이에요.

왜냐하면 견성하고 나도 당연히 미진할 수밖에 없어요.

완전히 해결 끝나버리기 전까지는 그러면 완전히 끝났다는 사람 찾아가면 되겠네요?

그것도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단 말이에요.

제가 만난 많은 스승님이라는 분들 중에는 본인은 완전히 됐다고 하고 됐다는 많은 사람들 전부 다 저 사람들 다 아니야 나만 됐어 이렇게 하는 분들도 많았는데 그분이 진짜 됐는지 안 됐는지 알 수 없단 말이에요.

우리의 안목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게 오히려 더 좀 삿된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단 말이에요.

다 나만 부처라고 하고, 나머지는 모든 스승들을 싸그리 아니라고 하는 분들이 의외로 또 계시다니까요.

그래서 하여간 제일 중요한 건 끝까지 내가 끝끝내 이 공부 포기하지 않고 내가 끝까지 가겠다.

이런 마음으로 내가 한결같이 정진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공부인의 자세입니다.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출처] 법상 스님 - 견성, 깨달음은 가풍마다 다르다(2)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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