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6-0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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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안애어(和顔愛語)(1)
청화 스님
재물 보시가 있고 그 다음에는 또 법문보시 즉 제일 보시 법보시法布施가 있습니다.
헌데 어떠한 것도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따라서 재물보시가 있으면 반드시 거기에 보답해서 법문보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 신도님들께서 오늘 이렇게 비오는 가운데 고생도 하시고, 또 여러분들이 베풀어 주신 재물보시로 해서 우리 대중들은 찰밥 공양을 참으로 흡족히 잘했습니다.
이렇게 재물 보시를 받았으니 반드시 그 보답으로 법문보시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말하기를 싫어하고 말도 잘 못 합니다만, 보답하는 의미에서 제가 법문 보시를 안 하면 저도 빚이 됩니다.
할 수 없이 빚을 갚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재물 보시와 법문 보시 그리고 또 한 가지 보시는 무외시無畏施 보시가 있습니다.
무외시 보시란 한문자로 하면은 없을 무無자, 두려울 외畏자 즉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를 뜻합니다.
우리는 흔히 재물보시라 하면 사회 복지사업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법문 보시도 여러 가지 강습회나 법회도 많이 있어서 법문 보시는 많이 듣습니다만, 무외시 보시란 것은 조금 생소할 것입니다.
중생의 불안스러운 마음을 없애주는 보시입니다.
우리가 눈살을 찌푸리고 아주 옹졸한 사람 옆에 있으면 우리 마음도 괜히 불안스럽습니다.
헌데 아주 평화롭고 공자 같은 분을 표현할 때 춘풍 가운데 있는 기분이라고 말합니다.
덕이 많고 그 분 옆에 가면 어쩐지 향긋하고 봄바람 같은 아늑한 기운이 있습니다.
아무 말도 않고 또는 재물도 베풀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기 표정으로 그와 같이 하는 보시, 봄바람 같고 고향같이 아늑한 느낌을 주는 그러한 보시가 무외시 보시의 하나입니다.
관세음보살님 상호를 보면 얼굴 자체가 삼십이三十二대인상大人相이라 팔십종호八十種好라 여든 가지의 가지가지 좋은 모습으로 손이나 발, 피부, 머리카락이나 모두 자비와 지혜의 덕성에 딱 알맞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일반 중생은 좀 잘났다 하더라도 눈이 좋으면 입이 좀 재미없고 그와 같이 완전무결한 분이 별로 없습니다만, 부처님 상호는 삼십이 대인상이라 어디나 모두 원만 무결합니다.
부처님의 원만 덕상도 그냥 우연히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손이 가령 부드럽거나 거칠 거나 하는 그것만도 역시 과거 전생에 공덕의 과보입니다.
덕을 많이 쌓은 사람들은 금생에 화장을 별로 안 한다 하더라도 부드럽습니다.
살생도 하고 중생들한테 거칠게 대한 사람들은 금생에 피부도 거칩니다.
그런데 부처님 상호는 그러한 모든 덕상이 갖추어 있습니다.
과거 무수 생 동안에 자비와 지혜를 쌓아온 적선공덕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많이 공덕을 쌓았던지 그런 공덕은, 금생에 나오실 수 있는 부처님 공덕은 백겁장엄百劫莊嚴이라, 백겁 동안 더러는 자기 몸도 희생을 하고 재물도 베풀고 가지가지 쌓여서 그와 같이 금생에 덕상을 갖추신 것입니다.
백겁 장엄이라, 한 겁이란 무량한 세월입니다.
한 겁도 무량세월인데, 하물며 백겁이니까 더욱더 많단 말입니다.
그동안 어떤 때는 자기 자식도 바치고 어떤 때는 자기 아내도 바치고 그러한 가지가지 공덕을 베푼 그런 것이 금생에 나와서 그와 같이 무량 즉 백겁장엄 이라는 조금도 흠이 없는 덕상을 나투신 것입니다.
헌데 그 관세음보살님도 역시 아미타 부처님이나 여러 부처님께서는 그냥 설법상을 하고 계시고 이렇게 정진하는 상을 하고도 계십니다만, 관세음보살님은 이렇게 손을 들고 계십니다.
이렇게 손을 들고 계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너희들 중생한테 내가 모두 바친다.
그대들 중생의 소원을 내가 모두 들어준다 하는 무외시無畏施인 것입니다.
이렇게 손을 든 것이 중생들의 모든 두려움을 덜고 모든 고난을 구제한다는 부처님의 하나의 표식의 상징입니다.
대자대비의 서원이 곧 이러한 모습인 것입니다.
[출처] 청화 스님 - 화안애어(和顔愛語)(1) (부처님 찾아 떠나는 여행) | 작성자 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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